숙취

작품/짧은 글 2015. 7. 26. 02:10

술에 취했던 날 밤이면 항상 밤하늘에 떠있는 별의 갯수가 평소보다 많아 보였다. 그리고 평소에 올려다 보던 그 밤하늘보다 가까웠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 몰려 날던 나방들도 집에 돌아가던 늦은 밤. 위아래로 요동치는 시야에 따라 올라오던 구역질. 가끔 목젖을 타고 넘어와 그 사람의 어깻죽지를 적셔도 멈추지도 묵언 하지도 않고 계속해서 내게 곧 있을 도착을 알리던 등 너머의 목소리. 한 손으로 나를 지탱해주며 힘겹게 길고도 긴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들어설 때 그 문지방을 밟던 구두의 따각거리는 소리. 거의 반 송장이 된 채 과한 음주에 계속해서 헛구역을 해대는 나를 침대에 내동댕이 치도 않고 살며시 내려놓으며 그제서야 소맷자락으로 훔치는 이마의 땀방울. 숙면과 가위 그 사이를 외줄타듯 휘청이다 밤을 넘기고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면 코 끝을 간질이던 갓 뜯은 말린 북어 냄새. 목이 주려 눈에 뵈는 것 없이 물가로 달음박질 치는 영양처럼 식탁에 앉아 북엇국 한 모금 들이키고 나면 그제서야 뒤에 널브러져 있는 그가 덮어줬던 이불. 모든 것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 사람이 떠난 후 다시는 술에 취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맹세는 구긴 종잇장처럼 어딘가 내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한 휴지통에 정확히 스트라이크로 꽂혀 사라졌고 그와 동시에 술에 취한 채 길거리를 휘청이며 걷고 있다. 집 주소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 사람 곁에서 취했을 때 있었던 일들은 하나도 빠짐 없이 선명하게 쑤셔온다. 가슴에 박동이 뛸 때마다 혈관을 타고 기억이 날 선 유리 조각을 든 채 머릿 속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어 덮치는 것만 같았다.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파왔고 헛구역질이 나기 시작했다.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밤하늘에 박혀 있는 별들은 여느 때보다 가까웠다. 그 사람과 나의 눈높이 차이 만큼 가까워졌다. 위장이 한번 더 역동했다. 토사물이 길가 배수구를 적셨다. 손등으로 입가를 훔치자 묻어나온 위액의 냄새와 입 안에서 올라오는 냄새가 함께 머릿속을 진동했다. 빨리 집에 가서 씻고 싶었다. 물 한 컵을 마시고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면 모두 다 씻겨 나갈 것 같다는 희망이 샘솟았다. 그와 동시에 집 주소가 기억이 났다. 힐을 벗어 양 손에 들고 스타킹 바람으로 걸었다. 나 자신은 모르겠지만 분명 비틀거리고 있을 것이다.

 

도어락 버튼을 누르는 검지 끝이 내 몸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실수로 누르면 다시 눌러야 한다는 것이 그토록 신경 쓰인 적이 없었다. 면접날 스타킹에 구멍이 나고 시간도 근처에 편의점도 없는 상황과 비슷한 크기의 위기감에 신중하게 버튼을 하나하나 꾹꾹 눌러가며 간신히 문을 열었다. 문이 잠기는 소리를 듣자 마자 바로 구두를 현관에 아무렇게나 던지고 벽에 기대어 스타킹을 벗어 던지고 치마를 끌렀다. 블라우스 버튼을 끌러 벗고 바로 욕실로 향했다. 욕실 불을 키고서 블라우스가 구겨지진 않을까 뒤를 돌아보자 벗어 놓은 옷들이 보였다. 널브러져 마치 변태 직전에 위험을 감지하고 필사적으로 도망가며 성충이 된 매미의 허물처럼 보였다. 내일 세탁소 쉬는 날인 것 같은데. 손톱을 기르고 있던 것도 깜빡하고 논 갈아엎듯 뒤통수를 벅벅 긁적였다. 여드름을 건드렸다. 뒤통수는 아프고 머리는 깨질 것 같고 브라와 팬티는 벗겨지질 않았다. 될대로 되라. 입은 채로 샤워기 물을 틀었다. 물이 아니라 얼음장으로 몸을 씻는 것 같았다. 그 상태로 한참을 욕조 안에 쭈구려 앉은 채 물을 맞았다. 냉장고를 열어 국거리를 찾는 소리와 벗어놓은 옷가지를 치워줄 사람은 당연히 없었다. 떠나가고. 곁에.

 

샴푸를 했는지. 린스를 했는지. 바디워시로 몸을 닦았는지. 클렌징으로 화장을 지웠는지. 양치는 했는지. 드라이로 머리를 말렸는지. 문은 제대로 잠겼는지. 옷은 구겨지지 않게 잘 치웠는지. 씻고 몸은 말렸는지. 안 말렸다면 감기 들지 않게 베란다 문은 닫았는지. 잠에서 깸과 동시에 수많은 의문이 기다렸다는 듯 발했다. 그 의문을 다 밀어 제끼고 내 몸은 그저 눈을 감은 채 반사적으로 코를 킁킁거려 냄새를 맡았다. 북어 냄새는 나지 않았다. 가스렌지에는 엊그제 어머니가 보내주어 반 쯤 먹다 만 김치찌개가 올려져 있을 뿐이었다. 눈을 떴다. 그리고 이불을 덮어 쓰고 소리 없이 울었다. 베개를 집어 던졌다. 어디에 맞았는 지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저 내가 잘못했던 모든 일들과 내가 고마웠던 모든 일들이 뒤섞여 엉망진창으로 이불자락을 적실 뿐이었다.

 

이별, 일 주일 하고도 네 시간 삼십이 분 후의 일이었다.

 

 

20150726 0205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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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4월 때와 같은 날씨였다

작품/짧은 글 2015. 5. 4. 17:26

여느 4월 때와 같은 날씨였다. 봄이면서도 여름이었다. 두 계절 사이에 걸터 앉아 갈까 말까 망설이며 마침내 결심하여 일어나려다 담배 한 대 피고 일어나야지 하고 다시 앉으며 불을 붙인 것만 같은 날씨였다. 긴 소매 옷을 입고 나서도 불어오는 바람결에 그다지 덥진 않구나 하고 빠르게 걷다 스며오는 땀에 소매를 걷어 붙이는 날씨였다. 나뭇가지들만 고요히 쉬고 싶음에도 바람 불어와 손 흔들게 됨에 부산스러울 뿐이었다. 머그잔에 타놓은 커피는 오질나게 달았다. 커피 생각이 나 퇴사 선물로 받아놓은 포트에 물을 받아 끓여 믹스를 세 개 넣고 저었던 것이다. 커피를 한창 마실 때 쓰던 컵이 어디론가 사라져 다른 컵에 양을 대충 넣어 저었던 것이었기에 그 단맛의 진함은 내 불찰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넘기려 해도 오질나게 달았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임에도 여름처럼 내리쬐는 햇빛이 너무나 선명하여 마치 꿈결같이 느껴지듯 단맛도 그러했다.

 

오랜만에 글이 쓰고 싶어져 서재를 뒤져 CD를 찾아내 이리저리 파일을 찾았다. 제프 백. 스콜피온즈. 사이먼 앤 가펑클. 에릭 클랩튼. 산지 얼마 안되었을 때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던 것들인데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한 구석에 처박아놓고 듣지 않게 되었던 것들이었다. 현실과 유흥의 경계가 점점 흐릿해져 애매모호해졌을 때는 듣는 귀조차 달라지는 모양이다. 봄날에 듣는 옛 노래는 가을에 듣는 것과는 사뭇 맛이 다름에 또 담배에 불을 지폈다. 이 갑에 든 것을 다 피우고 나면 더 이상 남아있는 연초가 없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정해진 그 데드라인이 참 좋았다. 담배가 남아있을 때 최대한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은 항상 안일한 자세로 일관하며 오늘이라는 단어는 잊고 내일이라는 말만을 되풀이하던 나에게 좋은 자극이 되어주었다. 편집장도 그걸 잘 알고 있었는지 내게 들어오던 담뱃값을 몇 주 전에 끊었던 것일테다. 자의로는 절대 쓰지 못하는 나를 위해 타의로라도 작문을 강제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가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원고를 받아들고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여느 때처럼 고개를 가로저으며 또 이렇게 중얼대리라. 소설을 쓰라고 했지 또 수필을 끄적여놨네. 라고 말이다. 그러면서도 편집을 하고 다듬고 내게 연락을 하며 담뱃값을 보내리라. 그 담뱃값이 끊길 때서야 비로소 난 또 소설이라는 탈을 쓴 수필을 적어 보내리라. 다음 담뱃값이 떨어질 때는 계절이 어디에 머물러 있을까. 알 수 없을 것이다. 담배를 피우려고 담배갑을 열어 제낀 순간 몇 개피 남아있지 않은 담배를 보고서야 나는 비로소 창밖을 내다볼 것이다. 다섯 개피 남았다. 창 밖으로는 여전히 불어오는 바람에 그만 쉬고 싶다고 손사래를 치는 것인지 아니면 바람을 타며 비로소 움직이게 되었음에 기뻐하는 것인지 모를 나뭇가지가 일렁이고 있었다.

 

소재가 필요했다. 소재는 많았다. 내가 다만 정 붙이지 못할 따름이었다. 여자를 등장시키지 않으면 정을 붙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나 자신이 여자를 등장시킴에 있어 그 여자에게 집착하지 않고 어느 정도 떨어져 거리를 두고 바라봄에 나와 독자의 시선을 똑같은 거리로 둘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 여자의 바로 뒤 또는 옆. 혹은 코 앞에서 바라보며 그 여자를 일일이 뜯어보고 그 여자의 기분이 되어보고 그 여자를 가지고 싶다는 일념 하나 만을 쓰고 있는 어찌 보면 안 될 글쟁이임에도 내 글은 어느정도 팔려 나갔다. 인세는 목공 딱풀로 돌아와 내 입에 칠을 해주었다. 그 끈적끈적함이 나는 좋았다. 몇 번 입술을 붙였다 떼면 사라지는 끈적함의 정도가 나는 좋았다. 항상 끈적끈적하면 신경쓰일 것이었다. 벽에 기대어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다가 손 끝에 만져지는 튀어나온 나사못을 이리저리 손으로 굴려보는 그런 잠깐의 어린 장난처럼 한 순간이 좋았다. 그 한 순간에 머물러 있고 영속을 추구하지 못하기에 내 글 또한 그 단발성을 따랐다. 그럼에도 사 읽는 사람들이 궁금했다. 이런 글이 뭐가 좋다고 사읽는 것일까. 아무래도 좋았다. 담배가 끊어지는 순간 이 몹쓸 몸은 손을 떨 것이고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나는 원고를 써 보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담뱃진에 쩐 손가락으로 자판을 두들기고 있는 것이었다.

 

세상은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바뀌며 고동치고 있음에도 나 자신은 정지한 채 그저 들어오는 담배 연기에만 움찔대며 천천히 맥동하고 있을 뿐이었다. 언제까지 이런 글을 팔아먹을 수 있을까. 담배를 물었다. 세 개피 남았다. 서점에서 책을 집고선 카운터로 다가가 얹은 다음 열 지갑의 대상은 언제라도 나 말고 다른 누군가로 변할 수 있었다. 그 초조함이 좋았다. 타의로부터 발한 그 죄여옴의 느낌이 좋았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CD는 반대로 돌기 시작했다. 제시 쿡의 플라멩코 기타였다. 바람이 부는 소리를 듣지 않으며 바람에 춤추는 나뭇가지의 움직임 모양새를 보는 것은 항상 기묘한 느낌을 들게 한다. 나뭇가지를 움직이는 것이 바람이 아니라 내가 듣고 있는 음악이라는 착각은 내가 앉아 있는 세상을 꿈결처럼 느끼게 했다. 항상 약에 취해 사는 것처럼 나를 몽롱하게 만들었고 그 몽롱함의 비영속성에 나는 또 전율하며 웃었다. 하루살이의 세상에 예술과 담배가 있다면 그들도 이렇게 살 것인가 하는 상상을 했다.

 

담뱃재가 트렁크 팬티 위로 떨어졌다. 입에 문 채 두들기다보면 코로 역류해오는 연기가 좋았다. 이따금 세게 기침을 했다. 그 기침이 좋았다. 모든 것이 좋았다. 어두컴컴하지는 않지만 밝지도 않은 방 안이 좋았다.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가 매번 불규칙하게 어디론가 향하다 이내 눈으로 볼 수 없는 정도로 흩어져 퍼지는 것을 보는 게 좋았다. 제시 쿡이 좋았다. 제프 백이 좋았다. 개리 무어가 좋았다. 다방에 앉아 몇 갑이고 담배를 피울 수 있었고 이따금 돈 없는 음악가가 커피 값 대신 통기타를 두들기던 때가 좋았다. 테이블 위에는 꽁초가 솔방울처럼 꽂힌 재떨이가 있었고 글씨가 뭉게질 때마다 연필을 깎은 조각이 널브러져 있었다. 담배를 문 채 소파에서 허리를 굽혀 원고지 위에 아무렇게나 글을 쓰고 있으면 옆에 다가와 앉아 관심 어린 눈빛으로 나와 원고지를 번갈아 바라보던 다방 아가씨의 그 표정이 좋았다. 사장은 벚꽃 구경을 하러 가 어수룩한 손짓으로 레코드를 갈아 끼우며 다방 안에 흐르는 고요를 길게 끌어주는 사장 아들의 난감한 표정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어쩌다 비지스를 틀어줄 때는 담배를 입에 문 채 그에게 엄지를 들어 보여줄 때의 그 보람에 찬 듯 웃는 표정도 좋았다. 재떨이에 꽂힌 꽁초는 모두 필터가 자근자근 씹혀 거의 뭉게져 있었다. 나와 같이 필터를 씹으며 담배를 태우길 좋아하던 미스 최가 좋았다. 하룻밤 같이 보내고서 다방에서 매일 같이 앉아 날아드는 날벌레에도 웃으며 즐기던 미스 최는 한 달이 지난 후 어디론가 훌쩍 떠났다. 사장 아들은 쌍화탕을 내올 때 꼬깃꼬깃 구겨진 쪽지 하나를 내게 건네주며 계란을 깨트려 타주었다. 쪽지 안에는 주소가 적혀 있었다. 그 쪽지를 받고 나서 내가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적어도 연락을 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녀도 연락을 바라고 쪽지를 남긴 것은 아니리라. 나를 너무도 잘 알던 여자였다. 나를 잘 아는 여자는 나와의 이별에도 대부분 묵묵히 그저 자기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아달라는 식으로 연락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렇게 미스 최, 미스 박, 그리고 어느 불문과 여대생까지 세 명의 여자를 그 다방에서 만났고 이별했다. 만남과 이별의 끄트머리에서 나는 여전히 묵묵히 다방에 가 삼 번 자리에 앉아 원고지를 만지며 연필을 깎고 커피를 마셨다. 그런 날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다방에 가던 날에 나는 원고지를 챙기지 않고 그저 소파에 허리를 묻은 채 커피를 마시며 앨런 파슨스의 올드 앤 와이즈를 들었다. 소파에 그렇게 푹 기대어 커피를 마신 것은 거의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기억한다. 사장 아들은 그 새 노련한 다방 주인이 다 되어 있었다. 단골 하나가 이제부터 오지 않으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내 옆에 조금 멀찍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년간 마주치며 말 없이도 대강 서로를 알았던 사장은 병원에 누워있다고 했다. 나는 지갑을 열고 바로 옆 꽃집에서 비싼 꽃은 살 수 없지만 그래도 화분은 만들 수 있을 정도의 돈을 사장 아들에게 내밀었다. 그는 그저 묵묵히 사양하지 않고 그 돈을 받았다. 그러고나서 듣고 싶은 음악이 있느냐고 내게 물었고 나는 딱히 마땅한 음악이 생각나지 않아 잠시 머뭇거리다 딱 한 번만 올드 앤 와이즈를 반복해줄 수 없냐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곤 레코드 플레이어 앞으로 갔다. 그렇게 올드 앤 와이즈가 다시 흘러나왔다. 항상 꽁초가 수북히 쌓여 처량해보였던 양철 재떨이도 이별했지만서도 그들이 앉던 자리는 항상 비워두었던 미스 최와 미스 박 그리고 그 여대생과의 기억도 이별이었다. 커피를 다 마시고 받침대에 잔을 내려놓은 다음, 올드 앤 와이즈를 끝까지 듣고서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장 아들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잠시 쳐다보는 것에 손을 들어 인사를 할까 했으나 그냥 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갔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갈 때마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어느 음악 소리가 내 안을 티스푼을 넣어 커피를 휘저을 때의 맴도는 것처럼 휘돌았다. 올라갈 때마다 그 소리는 선명해졌고, 거의 다 올라가 햇빛이 보일 즈음에야 그 노래를 알 수 있었다. 바로 앞 맞은 편 다방에서 흘러나오는 존 레넌의 러브였다. 나는 잠시 다방 밖에 걸터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이곤 그저 멀찍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등 뒤에서부터 내리쬐고 있는 태양이 움직이며 내 시야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담배를 태웠다. 음악은 진작에 바뀌었음에도 나는 계속해서 존 레넌의 러브를 듣고 있었다.

 

반 갑쯤 들어 있던 담배를 다 태웠을 때, 적어도 미스 최한테는 연락을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여자. 존 레넌을 좋아했었던 것이 비로소 생각났다.

 


2015 05 04 17 24

생각 나면 더 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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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題

작품/짧은 글 2015. 2. 20. 20:05

도어락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밤 늦은 찬 바람이 열린 문 사이로 들어온 것을 느낀 듯, 집 안의 인기척이 부스럭댔다. 그녀였다. 메리야스와 반바지 차림을 하곤 오늘도 묶은 머리를 한 채 아직 구두를 벗고 있던 내 앞으로 다가와 웃었다. 어서 와 라는 그 말에 나는 웃으며 구두를 다 벗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서류 가방을 내려 놓고 끌러 아직 남아있는 잔업을 꺼내 들곤 외투를 벗어 행거에 걸었다. 그리곤 방 안으로 들어가 그녀의 컴퓨터 옆 침대 위에 앉아 벽에 기댄 채 들고 왔던 두터운 종이 뭉치를 읽기 시작했다.


안 씻어? 그녀는 커피를 가져와 침대 옆 콘솔에 올려두곤 컴퓨터 앞에 앉아 내 쪽을 보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고 답했다. 씻을 시간도 없다는 뜻을 담은 그 말에 그녀는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곤 포토샵의 남은 작업을 계속했다. 스웨덴어. 스페인어. 헝가리…어. 헝가리라는 단어의 어감이 좋았다. 아주 아름답고 수려한 여자의 이름이 헝가리라면 그녀를 부를 때마다 입 안에 맴도는 헝가리라는 단어의 어감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나에게 이 세상 바깥의 느낌을 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헝가리어는 알지 못했다. 헝가리어는 내일 다시 가져가 대사관 쪽 지인에게 부탁하면 될 것이다. 번역 일에서 정 해결할 방법이 없을 때 마지막으로 향하는 구조 무전이다. 식구가 세 명 뿐인 번역 사무실의 사람들이 모든 언어를 다 알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왼손으론 턱을 괸 채 모니터와 눈 싸움을 하는 마냥 뚫어져라 쳐다보며 오른손으로는 타블렛 펜을 잡고 끄적이고 있었다. 그녀가 작곡한 앨범의 커버를 만드는 중이었다. Metro line and Blue Velvet on the Ground. 앨범 이름이 너무 긴 거 아니냐고 이름 지어줬던 내게 물어왔던 그 물음에 나는 이렇게 답했었다. 아무리 길고 아무리 불편해도 들을 사람은 다 들어. 그 말에 그녀는 피식 웃으며 알았다고 말하곤 커버를 만들어줄 사람을 구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뭐든지 비싸지기 마련이었고, 그녀는 그 돈이 너무 아깝다고 말하며 자기 스스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돈이야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다는 말이 턱 끝까지 올라왔지만, 그녀 자신의 작품이기에 그녀가 만드는 것이야말로 완벽한 종지부라 생각하여 그만 두었다.


그렇게 같은 포트에서 끓인 커피를 같은 공간에서 마시며 서로의 일을 하고 있었다. 둥글게 말린 형광등은 천장을 그리고 방 안을 새하얗게 칠하려는 듯 밝게 빛나고 있었고, 나는 그 빛에 물든 천장의 벽지 무늬에 시선을 뺏긴 채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뭘 하고 있는지 궁금했던 듯 잠시 펜을 놓고 의자를 돌려 무릎을 끌어안은 채 그 위에 얼굴을 파묻곤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세히 알지 못하는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는 그녀가 나를 보고 있음을 알아채곤 웃으며 마주 보았다.


커피 더 가져다줄까?

괜찮아. 더 마시면 못 잘 것 같아.

그녀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모자란 미소를 짓고는 의자를 돌려 다시 펜을 잡았다. 타블렛 위로 펜 끝을 두들기는 소리가 살짝씩 들려왔다. 그 소리는 마치 잠시 어디론가 잠겨 있던 내 의식을 박자에 맞춰 끌어 올리려는 듯 선명했다. 톡. 톡. 톡. 불어 한 페이지와 독일어 세 페이지, 그리고 영어 열다섯 페이지를 번역한 후 랩탑을 꺼내 타이핑을 시작했다. 그녀의 키보드 소리와 내 키보드 소리가 맞물려 방 안은 마치 점심시간이 지난 후의 회사 사무실을 연상케 했다. 조수도 집 안에선 저렇게 허물없는 모습으로, 배가 드러나도 아무렇지도 않은 채 키보드를 두들기며 컴퓨터를 하고 있을까. 아니면 회사에서처럼 조신한 모습으로 조용히 앉아 바른 자세로 커피를 마시며 조용히 마우스 휠을 굴리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그리고 앞선 생각이 다시 내 의식을 따라와 넌지시 만져왔다. 메리야스가 작은 모양인지 그녀의 허리께 살이 드러나보였다. 그저 '순수하게' 섹시해보였다. 손에 들고 있던 종이 뭉치를 내려 놓고선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 앉았다.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생각나는 앨범커버 작업본이 보였다.


수정한 거야? 그녀는 내가 인기척을 내지 않았던 듯 깜짝 놀라며 펜을 멈추고 돌아봤다.

놀랬잖아. 소리도 없이. …응. 조금 고쳐봤어. 너무 어두운 것 같아서 톤을 조금 높였어.

노을이 적막하게 내리쬐는 주홍빛 오후의 하늘과 어딘가로 뻗어있는 기차 레일. 시작은 누구나 같은 곳에서이지만 향하는 곳은 제각각 다를지도 모르는 무지향성을 느끼게 하는 앨범 커버였다. 볼 때마다 왠지 모를 쓸쓸함에 그녀를 안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오늘 조금 쌀쌀맞은 것 같아. 갑자기 그녀가 말했다. 내가 그랬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을 곧 고쳤다. 그녀가 그렇다고 한다면 내 자신이 아니라고 해도 그런 것이다. 나는 다시 생각했다. 어디서 쌀쌀했던 걸까. 그 포인트를 빨리 짚어내고자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어김없이 늦을 것이다.


모르는구나. 역시나 늦었다. 그녀는 뒤로 쓸어 넘긴 채 묶어 드러난 이마를 짚고는 한숨을 쉬었다. 피곤해 하는 것 같았다. 눈치채지 못한 내 자신을 그제서야 다그쳤다. 전에도 그랬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그녀가 아무리 내게 그렇게 말하더라도 그녀가 말하기 전에 눈치채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고, 그렇기에 함께 지내는 것이니까. 그녀도 그렇게까지 화 낼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빨리 씻고 와서 스킨십을 하던, 피곤해 보인다고 말을 건네며 오늘은 이만 자자고 말해주던 해줘. 나 잘 알잖아. 먼저 뭐 하자고 말하기에는 네가 너무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 같아 방해하는 느낌이 들어서 싫어.

그런 그녀의 말에 나는 그저 묵묵히 일어서 그녀의 뒤로 가 어깨를 감싸곤 그대로 목 부근을 안았다. 그녀는 아직 토라진 듯 그저 가만히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슬며시 손을 올렸다. 가녀린 손끝이 내 팔에 닿았다. 그녀는 마치 내 팔에 난 털이 처음 알게 된 것이라도 되는 듯 살며시 쓰다듬더니 그대로 몸을 푹 기대어 내 뺨에 뺨을 맞대었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원한다던가 하는 타이밍은 절대 아니었다. 그저 이렇게 있는 것만으로 커피 몇 잔, 담배 몇 개피보다 더 위안이 되고 푸근한 느낌을 받을 뿐이었다. 그렇게 모니터는 계속해서 '어디론가' 뻗어있는 기차 레일 그리고 마치 누군가를 떠나 보낸 날의 노을처럼 적막하고 정확하게 마음 속을 스며 찌르는 은은한 파스텔 톤의 햇살을 비추고 있었다. 앨범 커버. 불어. 독일어. 헝가리. …헝가리어. 형광등. 천장. 메리야스. 만지면 부수어질 것만 같은 그녀의 어깨. 쇄골. 나의 두터운 팔뚝. 머리를 묶어 올려 살며시 드러난 그녀의 목덜미. 그녀의 어깨에 스치는 와이셔츠 옷자락의 촉감. 늦은 밤이었다.


헝가리. 무심결에 그 단어를 읊조렸다. 그녀는 살짝 흠칫하다가 의자를 돌려 나를 꼭 안았다. 날갯죽지에 그녀의 길고 가녀린 손가락들이 감싸왔다. 그녀는 잠시 내 어깨 위에 턱을 올려놓곤 어딘가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응. 왜?




END

2015 02 20

2004 Copyright [N]


Keyword : 니트

Music : Casker - 후유

https://www.youtube.com/watch?v=hIvpijob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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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작품/짧은 글 2013. 11. 23. 03:54

너무 멀리 와버렸다.

짐짓 짚어보려 한 바닥은 짚이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무릇 빠져 죽어야 당연하거늘

빠져 죽지조차 못할 정도로 멀리 와버렸다.

 

 

바람조차 불지 않았다.

쨍쨍 햇빛이 내려쬐고 있었다.

 

 

그 무엇이든, 내가 바라지 않는 것만 이루어지고 있었다.

내가 바라서 한 일이 바라지 않는 것으로 흘러가 빚어졌다.

 

 

그 결과를 바라보며 나는 웃으며 동시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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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

작품/짧은 글 2013. 11. 23. 03:49

바람이 서느렀다. 이태까지의 바람과는 서뭇 다른 느낌이었다. 살갗을 넘어 뼛속 안에 닿아오는, 차가워오는 느낌이 없이 내 피부가 애초에 서늘했던 듯 느끼게 만드는 바람이요 흐름이었다. 이따금 그 것들이 흘러가다 나라는 둔덕을 넘어 갈때면 그들은 내게서 체온을 살며시 앗아갔다. 나는 죽은지 꽤 된 시체마냥 서늘해진 팔뚝을 비벼만지며 날씨를 즐겼다. 손바닥에 긁히는 팔의 살갗이 차가움에 달궈져 당기었다.

안개가 진함과 옅음의 차이가 없이 고르게 뿌리어있었다. 살며시 보이는 저 너머의 빌딩들이 내 고향에서의 풍경처럼 산이었으면 싶었다. 그 중간, 안개에 가리워진 것이 호숫가의 둔덕일 것이며, 안개가 서서히 저녁이 되어 걷어지고 나면 커다란 호수가 잔잔히 너울질하며 수면에 떠있는 풀잎이며 개구리밥을 좌우로 저울질 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도시 한복판. 내가 그리던 그 광경은 이미 멀리 떠나왔고, 그리고 나는 방금 시체마냥 식은 팔뚝을 비비며 그 시림이 마찰열을 견디다 못해 가슴 한복판으로 가는 것을 알아차렸을 뿐이다.

추우니 여느 날처럼 반팔 입지 말고 잘 입고 다니라고 그녀에게 연락을 하고 싶어졌다. 그녀는 뭐라고 보내올까. 여느 때처럼 그래 고마워. 라고 보내올까. 아니면 이제 그만 연락해. 전에도 말했잖아. 자주 하지 말라고. 라고 할까.

나는 모른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어렸을 적 그 때 그 곳에서 손바닥으로 어루만졌던 그 서늘함을 온몸으로 맞서는 것이 너무 슬프다는 것 뿐이었다.

세월이 지나 나는 아직 어린아이일 뿐인데도 자라난 내 몸을 보고는 한기가 똑같이 자라나 나를 덮쳐온 성 싶었다. 그리고 난로는 있었지만, 그 난로에 딱 들어맞는 땔감은 저 멀리. 닿아본 적도 없는 호숫가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 닿지 못할 것이다.

오늘도 나는 호숫가에 앉아서 짙게 깔린 안개를 보며 마음을 고이 접어 돛단배를 만들었다.

띄우지 않고 구겨 버린 종잇배들이 내 옆에 수없이 널브러져 있었고...


2013 05 29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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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

작품/짧은 글 2013. 11. 23. 03:43
유리창에 영근 빗방울은 하천줄기마냥 여러갈래로 나뉘어 흐르다가 이내 실리콘으로 막음질된 모퉁이에서 흘러내려 사라졌다. 뭉게져 흩어져 흐름으로, 흐름에서 다시 뭉게져 하나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그 누구의 무언가와 같았다.

유리창에 대본 손에는 한기가 어렸다. 조금은 아득히 먼 어딘가에 지독한 추위가 있는 느낌이었다. 한기는 너무나도 선명해서 그 선명함으로 나를 베고 들어올 것만 같았다. 선명함 자체에 얼음 송곳이 돋아 있는 듯이.

어린 아이의 것으로 되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항상 이 추위 앞에선 나는 브람스에서의 그 아이의 모습이다. 한없이 작았다. 우주적인 존재 앞에 선 느낌이었다. 절대영도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지독한 추위였지만, 결코 내가 죽거나 다치지는 않았고, 그저 그 선명함에 베여가며 놀란 눈을 감추지 못할 뿐이었다.

어딘가에서 달그락 소리가 들리고,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피겨 선수를 보던 시선이 따뜻한 스프와 양돈까스로 돌아갈 적에, 상처는 지혈되고 나는 그 아문 상처 안에 그 한없는 차가움의 씨앗을 문 채 그렇게 자랐다.

이따금, 비가 너무도 맑게 내려 운동장에 먼지을 흩뿌릴 것만 같은 날씨에, 축축하지 않고 선명하고 차가운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다보면, 문득 가슴 한 켠에 바람이 불어 내 살을 비집고 타들어온다.

그럴때면 그 선명함을 떠올리고는 이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유리창에는 아직도 수증기가 서려 얕게 얼어붙어 있었다. 나는 손이 더러워진다며 야단치는 어머니를 듣는 둥 마는 둥 하고는 그 빳빳하면서도 사르륵거리는 냉기를 조심스래 활짝 핀 손바닥으로 훑어 피부로 그 맛을 봤다.



어느샌가부터, 유리창은 더더욱 차갑고 선명해져만 갔다. 내가 어른이 되고 부터는 더더욱...


2013 05 10
02 43

[N]

 

나는 언제 어디선가 이 노래를 또 다시 듣고 있겠지

작품/짧은 글 2013. 11. 23. 03:06

 

 

어디부터 설명해야할 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이 좁은 고시원 방에서 나는 누군가를 그린다.
그것이 나의 글이 대변하기 시작했던 제일의 논제이고, 지금도 그렇다. 누군가를 찾기 위해
글을 쓰는 나 자신을 볼 때마다 항상 자위용 글을 쓰는 느낌이 들지만, 개의치 않는다.
나 자신의 상처를 덮기 위해 쓰기 시작한 것이 소설이고, 또한 남의 것도 그러할 것이니.
비록, 미미하나마 저 북극에서 내려다보는 별들의 차가움마저 가슴 깊이 와닿았고,
정처 없이 단숨에 스칠 인연들에게 하나하나 인사하며 떠도는 유성의 꼬릿자락에도 나는 닿았다.
이 세상에서 제일 고독할 별들의 마음을 가지고서 나는 그 마음을 내 마음에 맞게 세공하고 있었다.
언제쯤 소켓에 딱 들어맞을지는 모르겠다만, 단 하나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있다.

 

내가 글을 씀으로써 그녀를 만날 수 있다면, 나는 무중력의 가운데에 서서도 자랑스럽고 보람찬 숨을 쉴 수 있을 것이다.

 

 

2013 03 21 00 35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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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까기 인형의 데카당스

작품/짧은 글 2013. 11. 23. 03:03

……그리고나서 왕자는 클라라를 과자의 나라로 데리고 갔어요. 얼마나 지났을까, 왕자는 클라라의 눈을 가린 손을 살며시 들었고, 클라라는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어둠 속에서 알록달록한 빛을 향해 눈을 떴어요. 그러자, 클라라의 눈앞에 과자로 지어진 커다란 집과, 줄기가 초콜릿으로 되어있는 사탕 나뭇잎이 달린 나무가 수없이 보였어요. 심지어는 땅바닥을 내려다보니 작은 조약돌마저도 알록달록한 젤리였을 정도였죠. 클라라는 놀란 눈빛으로 왕자를 바라보았고, 왕자는 웃으며 클라라를 과자 집으로 안내했지요. 클라라는 왕자의 안내에 따르면서 조약돌 두어 개를 주워 입안에 넣어봤는데, 너무 달콤해 입안에서 먹은 줄도 모르게 사라졌답니다. 과자집 안으로 들어서자, 비스킷으로 된 의자와 식탁 위에 티세트가 놓여있었고, 왕자가 왕자 앞에 놓인 잔과 또 다른 잔에 차를 따르고 있었어요. 클라라가 다가가 왕자 앞에 앉자, 왕자는 웃으며 클라라에게 찻잔을 내밀었어요. 클라라는 그렇게 왕자가 타준 차를 마시고 식탁의 모서리를 조금씩 뜯어 먹으며 왕자와 이야기를 하면서 한동안 시간을 보냈답니다.

 

얼마 후, 과자를 먹고 차를 마시던 클라라는 문득 깨달았어요. 이 세계에서 자기는 혼자구나. 난 다른 세계에서 온 혼자인 소녀일 뿐이야.

 

만약 클라라가 조금만, 조금만 더 어렸더라면 그런 생각 따위 할 새도 없이 실컷 과자를 먹고 차를 마시며 왕자와 이야기를 하고 신나게 춤을 췄을 테지요. 하지만, 이미 클라라는 그런 걸 조금이나마 아는 나이가 되어버렸어요.

 

클라라는 과자의 나라를 떠나 왕자에게 작별인사를 했고, 왕자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조용히 눈물을 흘렸죠.

 

어쩔 수 없는걸요.
너무 늦었는걸요.
조금만 더 일찍. 일찍 이었다면…….

 

<호두까기 인형의 데카당스>

 

 

 

 


그런 게 뭔지는 묻지 맙시다

2012 06 26 19 51 작입니다. 강조점을 써놓은 문장에는 굵은 글씨를 해놓았습니다.

느낌이 다르지만 시스템 상의 어쩔 수 없는 다름이니 납득할 수 밖에요.


[N]


짧은 글을 갈무리해서 올려야 할지 하나씩 올려도 될지 고민 중입니다.

 

추신도 엔젤하이로에서의 추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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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소녀와 어느 먼 나라의 임금이 꾸는 꿈

작품/짧은 글 2013. 11. 23. 02:59

언젠가는 만날 줄로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손끝에 닿아 만지고 느끼고 살아 숨 쉬는 그 숨결을 공유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먼 나라의 왕이 꾸는 짧은 꿈자락과 같은 것이었고 그것을 부여잡은 나는 그 꿈의 끝에서 결말을 바로보고는 주저앉아 가라앉아갔다. 모든 빌딩과 건물들이 사라진 한 들판을 보고 있었다. 인위적인 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마분지로 접은 큰고니 한 마리만이 하천 위를 날고 있었다. 갈대들은 오랜 시간동안 한 방향으로만 불어온 바람 때문에 뒤로 누워 잠자고 있었고, 내 앞으로 곧게 뻗다 굽이굽이 굽어가는 길의 끝에는 누군가가 흰색의 나풀거리는 원피스를 입고 걷고 있었다. 모든 것은 다 원래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 하얀 원피스에 머리가 샌 듯 새하얀 소녀의 저 먼 뒷모습을 바라보며 저 소녀가 그 사람의 원래의 모습인가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꾸만 바라보게 되었다. 위로는 내가 나아가야할 길로 향하는 언덕이 있었고 그 언덕으로 나는 부정하면서도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천천히. 가을녘에 단풍이 물드는 속도와 비슷하리만치. 힐끗힐끗 계속 바라보았다. 소녀는 거의 뛰놀다시피 빙글빙글 돌며 새하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소녀의 모습은 점점 저 너머로 멀어져갔고, 나는 꿈자락의 끝에 다다른 나를 알아차리고는 표정관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슬퍼졌다. 원래의 세계를 버리고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슬픈 얼굴을 하고 돌아다닐 수 없다고 생각했던 걸까. 어찌됐든 나는 슬픔을 떨쳐내고 다시는 볼 수 없을 그 모든 태고의 것을 마지막으로 보려 했다. 소녀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moby - blue paper
이 문고판 용지 한 장에 담아내는 나의 이야기는 그렇게까지 길지도 않고 오히려 극히 짧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내가 어느 하천의 산책로를 걷다가 본 환상 아닌 환상과 실제 아닌 실제를 이 종이 한 장에 풀어내고자 하는 이유는 말하려고 입을 열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두루뭉실하고 많을지 모르지만, 어쩌면 단 하나뿐일지도 모른다. 나는 어디선가 정해진 것에 따라 이 길 위를 걷고 있었고, 어느 이유에선가 그 누군가도 정하지 않은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치에 의해 그렇게 정해진 무엇인가가 나에게 그녀를 보여주었고 나는 그것으로 인해 왠지 모를 편안함과 공허감과 슬픔과 아쉬움과 작별과 허虛함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곳에 있고 이곳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바라보여지고 있지만 닿을 수 없는, 그 머나먼 어느 나라의 어느 한 가난한 왕이 꾸는 꿈의 마지막 결말과 같은.죽도록 나아가도 닿을 수 없는 이상향이라는, 언젠가는 닿겠지 하지만 닿을 수 없다는 것에 나는 이 한 페이지의 글을 쓴다.


원래는 새하얀 소녀와 어느 먼 나라의 임금이 꾸는 눈물의 꿈이었으나, 뭔가 쓸데없이 붙어있는 것 같아서 지웠습니다.

2012 02 22 10 49 작입니다.

[N]

 

중간에 오른쪽 정렬이 되어있는 것은 저 중간의 moby - blue paper를 정렬하다가...어찌 고칠지 모르겠군요. 들여쓴 이유는 한컴 신국판의 문서 크기를 맞추기 위해서 입니다. 딱 한 장이 나오는 글이었어서요. 가독성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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