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총을 배달받은 어느 날의 사나이

작품/소설 2013. 11. 23. 03:25

수업 중이었다. 가늘게 주머니 안에서 울리는 진동에 잠에서 반쯤 깼다. 졸고 있었던 걸까.

주머니 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문자를 봤다.


02-332-2700

고시원입니다. 택배가 왔으니 받아가십시오.


뭐지. 택배? 택배 올 일이 없는데. 그렇게 잠시 갸우뚱하고는 잠시 눈을 비볐다.

아직 꿈에게 머리카락의 끝자락을 잡힌 상태였던 나는 이윽고 그에게 이끌려 그대로 깊은 잠에 들었다.


문득 후려쳐진 의식에 놀라 깨어나보니 아무도 없었다. 강의가 끝나고 십오 분 쯤 흘렀다.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니 휑한 강의실의 광경이 보였다. 맨 뒤에 바퀴 달린 거치대 위에 올려져 있는 갖가지 엔진들이 줄지어 서 기름 냄새를 바람에 흘리고 있었고, 파란 합성섬유를 깐, 유연한 디자인을 한 의자들은 하나같이 개성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정지해있었다. 문고리를 돌렸다 뗀 손에는 살며시 스쳐 지나갔던 스티어링 오일이 묻어 있었다. 기름때에 찌든 작업복을 락커룸에 넣고 밖으로 걸어나갔다. 바로 앞에 있는 우레탄 농구장에서 한 쪽 농구대에서 개인전을 하는 한 무리의 학생이 보였다. 오늘도 여태까지와 같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하늘은 마치 애초부터 난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회색을 띄며, 집중된 시선 속에 찬찬히 빛을 잃어갔다.

눈을 감았다 떼자, 다시금 연회색의 하늘이 보였고, 그와 동시에 나는 오늘 하루를 잃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여태까지와 같이. 여태까지의 몇 년간 들었던 느낌 이었다. 얼마나 많은 나날을 잃어버리고 산걸까, 나는.


밤 여덟 시의 길을 걸었다. 시간과는 맞지 않는, 어둡지 않고 탁해서 평소보다 조금은 밝은 하늘이 어색했다. 잃어버린 시간의 틈새 속에 끼인 듯한 느낌이었다. 길은 굴곡이 있어 살짝 숨이 찼고, 지나가던 예쁜 여자의 향이 스칠 때 숨을 크게 들이쉬는 순간이 되어 살짝 흠칫했다. 오른쪽, 자그만 대학가 상가에 늘어선 삼겹살 집 세 군대에서 여러 부위의 돼짓기름 냄새와 파 냄새가 섞이어 났다. 저 멀리에서부터 일정한 간격을 두고 크락션을 울리던 차의 정체는 사고가 난 SUV를 끌고 가던, 비상등을 킨 푸른 레카차였다. 조금 더 걸으면 오른 쪽에 정문을 오롯이 닫고 있는 초등학교의 바로 옆 문구점에선 주인이 키가 작아 닿지 않는 셔터 끈을 까치발을 하며 간신히 잡아내렸고, 언제나처럼 그 모퉁이에서 언제나 쌓여있는 쓰레기를 먹는, 진한 회색의 비둘기는 인도에서 발 밑, 도로를 쳐다보고는 모둠발로 뛰어내려 총총이며 걸어갔다.


언제나 풍경만을 보고 있다. 그 풍경은 항상 내게 말이나 글로서는 남지 않으며 오직, 그것도 슬프게 오롯이 기억으로만 남는다. 지나온 나날의 비디오 테잎은 서랍장을 채우고도 남아 이제 집 안의 공간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다. 그렇게 난 지쳤다. 테잎을 옮겨 적어야 이루어지는 나의 소망은 이미 저 먼 선 캄브리아기에 멈춰서서 고고히 금이 간 채 하찮은 듯이 나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눈이 내리는 날, 오돌오돌 떨던 몸을 겨우 이끌고 지친 듯 문을 열어 난롯불 앞에 앉았을 때 지나온 눈길의 고난을 잊는 것처럼, 말 그대로 눈 녹듯이 나의 하루하루의 가치와 의미는 사라져갔다. 그저 나는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된 것이다. 하루하루, 찍어서 살며시 잡고는 팔랑팔랑 흔들어 압정에 꽂아 어느 한 구석의 벽에 찔러넣고는, 그 사진만을 보며 매일같이 생각하고 느끼는 나 자신이 보인다. 하얗고 빈 방 안에서, 그 누구도 보러 와주지 않는 나 혼자의 박물관을 지키며…….


골목에서 나와 금요일 밤의 이태원의 거리를 걷는다. 연인. 삐끼. 상인. 외국인. 클럽 매니저. 섹스숍의 전단지. 바닥에 널브러진 뉴 인터페이스 포스터. 어느 바에서 흘러나오는 프랑스 여 가수의 꾸밈없는 목소리와 그 옆의 옛날 클럽 비트인 We are electric의 스쳐가는 한 부분.


위 아 일렉트릭.

아무 의미도 없는 한 구절이 그렇게 내 속을 흐르며 헤멘다. 걷는 거리마다 연인들이 서로의 겨드랑이에 팔을 얽거나 서로의 손바닥에 손바닥을 포개어 놓은 모습이 지나간다. 삐끼는 나를 제외한 앞뒷사람에게만 삐끼질을 했다. 한 외국인 남자가 한국인 여자를 꼬시곤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었다. 해는 저 멀리의 이름 모를 산의 둔덕에 손을 짚고 부드럽게 월담을 하고 있었다. 화려한 거리. 늘어선 프랜차이즈 옷집들과 음식점들. 외국 음식 전문점. 클럽. 지하의 클럽. 상층의 클럽.

IP부티크 호텔. 해밀튼 호텔. 이태원 역. 버스 정류장. 외제차.


그 모든 네온과 LED와 HID와 모닥불과 백열등을 지나서. 온누리에 내린 빛과 영광의 곁길, 가파른 언덕으로 올라가는 포장이 좋지 못한 길 위에 내가 있다. 빛도 영광도 그 모든 것도 닿지 않는 곳에, 관보다는 조금 넓은 방 한 칸에 나는 그렇게 숨죽여 하루하루 찍었던 사진을 꺼내어 늘어놓고는 혼자 소리죽여 울고 웃는다…….


정작 슬픈 일은, 현상액이 없어서, 얼마 전부터 저 먼 날의 잊고 싶지 않은 기억과 마음들이 서서히 우그러들어 먼지가 되어가고 있는 것을…….





다른 공기가 흐르는 보이지 않는 벽의 결계의 손잡이를 돌려 열고는 발을 들여놓았다. 좁디 좁은 통로와, 그 통로에서 한 번 왼쪽으로 돌아 세 걸음을 걸으면, 나의 현상실이 있다. 침대 위에 가방과 겉옷을 벗어 내려놓고 문을 닫았다. 다시 앞으로 다섯 걸음. 왼쪽으로. 앞으로 열네 걸음. 오른쪽에 있는 관리실의 문을 열고 총무에게 택배를 받았다. 책 한 권 크기의 자그마한 택배 상자였다. 작은 것 치곤 무거웠다.


그대로 방금 전 왔던 길을 되돌아가 방문을 열고 침대 위에 택배를 던지곤 의자에 앉아 상반신을 길게 폈다. 책상 아래 냉장고 때문에 다리는 침대에서나 필 수 있다. 컴퓨터를 켰다. 오래 된 컴퓨터라 팬이 잠시 굉음을 내며 웅웅대더니 잠잠해졌다. 그 굉음의 잠깐동안 옆 방에서 벽을 두들겨왔다. 나는 잠자코 있었다…….


잠시 얼마 높지도 않은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보다 높은 천장을 바라본지가 얼마나 됬는지가 기억이 났다. 몇 년 전, 전주의 그리운 집에서였다. 그 때 올려다본 천장은 참 많은 생각을 들게 했었다. 천장과 얘기를 했고, 천장을 보며 살그레 웃었었다. 천장에 나 자신이 비쳐보이는 듯 해서 그 곳에 손가락을 가까이 가져다 대려고 하면 슬퍼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약간 베이지 빛이 도는, 까슬까슬한 벽지가 발라져 있는 채로 정지해있는 천장이 내 모습과 같았다고 생각이 들었었을까.


문득 택배가 생각이 났다. 바로 팔을 뻗어 잡고는 무릎 위로 올려놓고 얼마 전 깎은 손톱으로 힘겹게 테이프를 뜯었다. 골판지가 해체되고 난 자리엔 여태껏 만져본 적 없는, 아주 부드러운 검은 천으로 겹겹이 싸여진 무거운 무엇인가가 있었다. 뭔가 중대한 의미가 있어보이는, 혹은 있어보이도록 생겨먹은 그 검은 천을 천천히 걷어내자, 권총 하나가 보였다.



무슨 권총인지는 모른다. 게임에서 봤던 것 중에서 기억나는 이름은…콤팩트? 무슨 콤팩트인진 모르겠지만 콤팩트와 똑같이 생겼다. 아니, 여튼간에 중요한건 왜 권총이 나한테 왔냐는 거다. 어디의 누가 언제 어디서 보낸 것일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오발송? 아니, 애초에 대한민국에서 권총이라는 흉기를 누군가에게 택배로 보내는게 가능하나? 비록 보낸다 쳐도 그런 물건을 보내는데 실수를 해서 나 같은 사람에게 온다는 것 자체가 또 가능할까?


여러가지 망상과 잡념이 머릿 속을 옭아메어갔다. 나는 기름냄새가 나는, 거의 새것과 같아보이는 권총을 양 손으로 으스러질 것만 같이 세게 쥐고는 한참을 제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한 곳에 생각이 미쳤다.


총알이 장전되어 있을까?

어느 곳을 누르면 탄창이 나오는지 몰라 잠시 헤메다가, 손잡이 근처를 마구잡이로 문대다보니 탈칵 하고 탄창이 열렸다. 조심스래 꺼내자 금속성의 긁히는 소리가 났고, 곧바로 탄창이 빠져나왔다.


안이 비어있었다. 잘 보이지 않아서 형광등 바로 아래 쪽에 빛을 받게 해보자, 딱 한 발이 맨 아래에 간신히 보일 듯 말 듯 장전되어 있었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잠시 가만히 멈춘 채 앉아 있었다. 무엇인가 많은 생각이 들지만 정작 그 생각이 무언지를 보려고 하면 어딘가로 사라져 생각할 수가 없었다. 권총을 잠시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던지곤, 머리를 싸매쥐고는 한번 뒤로 쓸어넘겼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죽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이 났다. 잘 살아오고 있던 어느 나날의 밤에 내게 실수로 배달되어진 권총이 나에게 오만가지 추억과 기억을 끄집어내게 만들고 있었다. 잘 살아오고 있던 어느 나날의 끝자락에 마침맞게 내게 배달되어진 권총이 나에게 두 가지 생각과 그 결과의 파동만을 생각하게 만들고 있었다. 우그러들었던 먼지들조차 다시 모여들어 사진이 되었고, 잃어버렸던 추억과 기억들은 하나하나 세세하게 되살아나 숨쉬었다.

되짚어보자. 권총이란걸 안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생각을 하는진 모르겠지만, 이 것으로 죽음을 맞든, 혹은 그저 갑자기 나에게 삶의 존속여부를 시험에 들게 한 이 불청객을 무시하고 앞으로의 나날을 더 살아가든, 일단, 지나왔던 나의 소중한 것들을 되짚어보기로 결심했다.



언제인진 모르겠지만, 내 인생 최초의 기억 때부터 두 사람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니, 사이가 완전히 틀어져있었다. 같은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같은 차에 타 어딘가에 가고, 같은 집에서 잠을 자도 두 사람은 어딘가가 미묘하게 뒤틀려 있었다. 12mm 볼트에 13mm 복스알을 가져다 댄 듯 어딘가가 헛돌고 맞물리지를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이 지나서, 내가 어느 정도 자랐을 무렵. 고등학교 이 학년 때에 나는 두 사람이 진작에 헤어진 것을 알았다. 아마 그 최초의 기억으로부터 멀지 않은 순간이었던 것으로 안다. 몇 월 몇 일인지까지도 기억하고 있었지만, 밝든 밝지 않든간에 내 자신 그 자체의 것을 잊지 않으려 하는 나 자신조차도 그 사실은 잊고 싶었던지, 내 나이 몇에 일어난 일인지도 모른다.


치졸한 이유로 왕따를 당했다. 초등학교 이 학년 때부터였다. 친구가 열 댓 명은 있었고, 반 애들과도 말은 하고 다녔다. 그저, 몇몇 일진들에게만 당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시간 동안 나를 좀먹고 얽메어오고 내 행동을 강제하여 마침내 지금의 나 자신에게 조건반사 비슷한 것을 일으키게 한 점까지, 그 녀석들은 나라는 존재를 파괴하는데는 실패했지만 방해하는데는 완벽에 가까운 성공을 거두었다. 몇 년에 걸쳐 몇 명인지도 모를 그 녀석들은 지금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복수하고 싶어서라기보다, 그저, 이미 죽어버린 마음을 끌어안고 죽기 전의 감정으로 상처를 보듬어보려 해도 부질없는 짓이기에, 죽은 마음으로 생각한 거다. 참는게 좋은거다. 용서하면 이기는거다.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 집안이 불우하다거나, 어딘가 아픈 과거가 있다거나…….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좀먹어가며 쪼그라드는 반쪼가리 천사, 점점 자라나는 반쪼가리 악마가 되어갔다. 원래의 의지를 꺾어 선함으로 돌려놓으려는, 비록 일이 크게 벌어지는 것이 싫었을 뿐인 그 때의 생각은 점점 그렇게, 앞 면에서는 남을 용서하고 한없이 착한 나 자신을 보여주었고, 뒷 면에서는 한없이 어두운 자신을 끌어안으며 뜯어먹으며 그 피를 마시곤 아파서 울고 있었다. 스스로 너무나 외로워서 스스로를 물어 뜯어 살을 삼켰다. 따뜻한 피를 마셨다. 그렇게 하면 잠시라도 빈 가슴이 채워졌으니까.


가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몇몇 매체에서는 텅 빈 가슴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리고 내가 겪은 바로는 사람이 정말 외로울 때는 가슴이 텅 빈 듯, 공허하게 느껴져서, 갓 탄 커피를 담은 머그컵을 가슴팍에 비비면 그렇게 따뜻하고 채워지는 느낌이 들 수가 없었다. 베개를 끌어안으면 그 안이 스며드는 듯 해서 행복하게 잠을 잘 수가 있었다. 그 때부터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의 정글을 살아가며, 반쪼가리 천사와 악마가 되었고, 그 외로움을 풀어가는 폴라로이드 인생을 시작했었던 건지도 모른다.


온전한 가족이 갖고 싶었다. 가족 구성원이 모두가 서로 정상이라면 그 가족의 일상은 어떤 것일까가 궁금했다. 서로가 웃으며 식탁에 앉은 채 농담을 하고, 생선을 발라서 올려주고, 소파에 앉아 과일을 깎아 나눠 먹으며 같은 프로그램을 보며 웃고, 매일 아침 좋은 아침이라고 말하며 생긋 웃을까?


서로가 무표정으로 식탁에 앉아 누가 먼저 일어나는지 경쟁이라도 하려는 듯 서둘러 먹고는 무미건조한 말 두 세마디면 집에서 벗어나 그제서야 그나마 개운한 마음으로 아침의 시린 공기를 마시면서 그 공기가 가슴팍에 스며들 때 애써 모른 척 하며 가야할 길을 마지못해 가는 것과는 얼마나 다를까?


오히려 나 자신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아니, 개의치 않는 것처럼 살아왔다. 어렸을 적부터 별명이 애어른이었으니까. 애어른처럼. 어른처럼. 모든 고난은 지나가리라. 참고 참으면 행복이 오리라.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백 번 세고 다시 이백 번 세면 끝나있을 것이다. 내가 참으면 나 혼자의 아픔으로 끝나지만 내가 참지 않으면 모두의 아픔으로 끝날 것이라는 생각. 나 자신도 챙기지 못했으면서 남을 챙겼던 나의, 지금도 이유를 알지 못하는 이타주의적 태도가 너무도 좆같았다. 왜 그랬을까?


그리고, 이 수 만 번도 넘게 나 자신에게 물었던 질문의 대답은 항상 정해져 있었었다.

나 자신이 상처를 너무도 많이 입었으니까. 그 상처가 얼마나 아픈지를 아니까. 남들에게 그런 상처를 입히는건 죽어도 싫어서였어.




좆까라, 병신아.

힘내라, 병신아.

아직 수 만 장 중에 한 장 뿐일 사진 하나를 움켜쥐고 나는 끅끅대며 소리를 죽인 울음을 울었다.






따돌림은 중학교 때도 계속되었고, 중학교 이 학년 때 즈음부터 글을 쓰는 것이나 책을 읽는 것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던터라 삼 학년 때는 점심을 굶고 도서관에 있었을 정도였다. 덕분에 오후 수업때는 배에서 자꾸만 소리가 나서 난처했던 적도 많았다. 그리고, 그 삼 학년에, 나는 사랑이란 것에 눈을 떴다. 이런 류였다. 누구 누구가 좋아한대요 라고 몰아세우면 당사자들은 정작 마음도 없어서 불편해하고 싫다고 손사래를 치고 화를 내지만, 그게 오래 되면 어느 한 쪽이나 드문 경우, 양 쪽 다 마음이 생기는 경우였다.


당연하게도 난 그 한 쪽이었다.

빼빼로 데이에 짝꿍이었던 그녀 책상 서랍 안에 몰래 넣었던 서투른 비밀 선물은 바로 들통이 나버려, 그녀가 직접 말하는 것도 아닌 그녀와 친한 여자애가 전해준 싫대. 라는 말과 함께 되돌아왔었다. 그리고 그녀는 많이 불편해하고 있었다. 그렇겠지.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가 자신에게 고백을 했으니 불편할 수 밖에 없다. 내 잘못이다. 그렇게 나는 그녀에게 한없이 미안한 마음을 품고는, 포기했다.


어느 가을 날, 아직 하복을 입을 때. 자고 일어나보니 삼 학년이 점심을 먹는 시간이라 층 전체가 비어있었(을 것이)다. 내 옆자리에는 그녀의 하늘색-파란색의 부드러운 면 체육복이 있었다. 변태적인 생각은 없었다. 다만, 그저, 마지막으로 그녀에 관한 무언가를 기억하고서 그녀를 내 마음 안에서 놓아보내기로 했었다. 그런 생각 비슷했었다. 그녀의 체육복은 마치 군데군데 실이 뭉쳐 보풀어오른 것이 만져져 약간 헤진 느낌이 들었고, 부드러웠다. 살며시 코 앞으로 가져가자 살 냄새가 났다. 창 밖에는 햇빛이 약간 황금빛에 물든 채 비스듬히 내리쬐여 스며들고 있었고, 낙엽은 어딘가에서 흘러들어온 개미마냥 창가에 소리없이 쌓여갔다.


그렇게 나는 그녀를 놓았다. 그녀의 이마고는 그렇지 못했지만.

웃는 여자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직 겪어보지 못해 초짜였던 인터넷 상의 인연에게도 푹 빠졌었고, 시간이 지난 지금 한 여름날의 추억처럼 가끔씩 입에 올리며 그녀와 얘기를 한다. 하지만 곁가지일 뿐이다. 또 한 사람은 우습게도 나와 내 친구, 물론 인터넷 상의 친구가 동시에 고백을 했었다. 그녀와 나는 영혼을 함께 하는 친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정도로 내게 위안과 힘이 되어줬고, 서로에게 서로가 좋아하는 음악을 공유하며 좋은 친구로 지낼 수도 있었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녀가 정말 내 반 쪽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진정한 사랑인 것 같다는 허영감에 부푼 진심에 그 안정감을 깨고 고백을 했지만, 그녀의 이미지는 조각이 나 흩어졌다. 지금도 친하지만, 흩어진 그녀의 모습이 아쉬울 뿐이다.


그렇게 외롭게. 외로운 마음을 채우려고 헤메었다. 설상가상으로 고등학교 일 학년 때에는 무척이나 퇴폐적인 감상주의에 젖어들어 우울증에 시달렸었다. 덕분에 글은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그 푹 젖어 축 늘어진 허탈함과 공허함, 그리고 슬픔과 허무가 내 자신의 대부분이자 내 자신 그 자체여서 이따금 힘이 든다. 하여간에, 그 우울과, 내가 여태까지 안고 있었던, 친한 동생이 말해줬던 것과 같은 걸지도 모르는 '너무 착해서 자기 자신을 악마로 만들고 있잖아' 와 같은 내 자신 안에 내재된 무엇인가가 그동안 쌓여왔던, 죽어버린 내 심장에 한줄기 남아있었던 발화점을 건드려버렸는지, 고등학교 삼 학년에 나는 불량아가 되었다.


결과 130 여 일. 결석 80 여 일. 매일같이, 비오는 아침에도, 눈오는 흐린 날에도, 쨍쨍한 볕 아래서도 PC방에 갔다. 그 많은 돈이 어디서 났는진 기억이 안 나지만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학교 빠진걸 들키고, 나를 그렇게도 사랑하시는 아버지를 실망시켰다는 죄책감과 가면 어떻게 혼날지 걱정되었던 두려움과 불안함이 범벅이 되어 나 자신을 죽였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되살아나 모순을 저지르고, 다시 실망시켰다는 죄책감이 다가와 내 목을 조른다. 더욱 더 커져서 돌아와서는…….


고등학교 일 학년 때부터, 이 학년 때까지 마주칠 수 있었던 그녀 생각에 그렇게 목을 맨 이유인지도 모른다.





그녀도 인터넷 상에서 만났다. SNS에서. 헬리젯이라는 곳에서 만났다. 그녀는 내 우상 그 자체였다. 깨져버린 이미지의 그녀로 나는 예술하는 여자에 대한 이마고를 갖게 되었고, 중학교 시절의 그녀로 웃는 얼굴이 예쁘거나 성격이 밝은 여자에 대한 이마고를 가지게 되었다. 어느 한 여자로 인해 어른스러운, 성숙미를 가진 여자에 대해 이마고를 가졌고, 그 모든 것은 그녀에게 들어맞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것들을 제하고서라도, 내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던 여자였다.


하지만, 관심종자에 조울증 증상이 보였던 나는 SNS에 여러가지 글들을 쓰다가 관심 받고 싶다는 투의 글을 써가면서, 점점 사람들과 멀어졌다. 그럼에도 그녀는 나와 가까이였지만. 그러다 결국 나는 회의감을 느껴 탈퇴를 했고, 잠시 바쁜 공부를 해가면서 몇 개월 쯤 그녀를 잊고 살아갔다. 그 이후, 헬리젯에 다시 가보았지만, 그녀는 이미 없었다. 아니, 헬리젯 자체가 없었다.


네이트온이 유일한 동앗줄이었다.

그리고 그 동앗줄은 별로 믿음직스럽지 못했다. 그녀가 애인이 생겼다는 소식을 헬리젯에서 보았고, 그녀의 기념일 사진을 미니홈피에서 보았다. 그리고 진작에, 헬리젯에서 그 소식을 봤을 때부터 나는 그녀를 포기했다. 헬리젯 안에서 그녀와 함께였던 어느 한 사람의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그녀와 헤어졌음에도 그녀를 소유하고 싶어하는 병신같은 말들 속에서도 반박을 하지 못했던 나 자신이 원망스럽다.


난 그녀가 그렇게도 갖고 싶었고, 그와 반대로 그렇게도 지켜주고 싶었다. 그녀가 행복하다면 나는 아무런 문제 없어. 상관 없어. 그녀가 행복하다는데 내가 괜히 나 자신을 위해서 끼어들어서 무슨 상관인데?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이따금 고개를 치켜드는 내 뒷 면에 의해 파훼당했다.


너 자신도 못 챙기는 주제에 남을 챙겨? 자, 너 스스로를 위해 한번 행동해보라고.

그렇게 나는 그녀에게 몇 달에 한 번 메일을 남겼고, 쪽지를 보냈고, 괜히 나 스스로가 그녀에게 50을 받았음에도 그 50이 나에게는 500이어서 500을 받은 것처럼 그녀에게 행동했다. 그녀는 당연히 부담스러워했(을테)고, 그렇게 서서히 나는 그녀를 나 자신으로부터, 결과적으로는, 떼어놓았다. 은연중에 내가 바란건지도 모른다. 내 앞 면이 이긴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괴로워서 죽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제작년, 내 뒷 면이 저지른 또 하나의 일 때문에 나는 그녀의 전화번호를 얻었다. 카카오톡 친추를 했다. 하지만 소식은 없었다….




권총을 손에 쥐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쳤다. 딱딱하고 묵직한 느낌이 손 안에서 뱅글뱅글 돌았다.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나는 아버지의 장례식장 안에서 불효자식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아버지의 친구분들의 소리없는 질타를 받으며 상을 치렀다. 나 혼자서. 어머니와 누나들은 오지 않았다. 때려 죽이고 싶었다. 슬픔보다 이 세상에게 품은 분노가 너무도 커서, 나는 한 방울도 울지 않고 아버지를 하관하고, 뗏장을 밟고, 약주를 뿌려드렸다. 소나무 가지를 쳐낼 때, 새하얀 하늘 색을 품은 하늘을 어디선가 날아든 학이 날개를 펴고 가로지를 때, 나는 무너졌다…….


어머니와 누나들은 내가 아버지의 장례식 때에 아버지를 비호했던 것과, 아버지의 일생, 당신들을 위해 살아왔던 일생이 어머니로 인해 왜곡되고 와전되어 누나들에게 아버지가 뼈를 가는 증오와 분노를 받았던 것을 이를 갈며 얘기한 뒤로 연락을 끊었다. 반 년째 앓는 폐병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기가 힘들어 근근히 아르바이트로만 생계를 잇고 있다. 등록금은 국가장학금으로 내고 있고.




하루하루가 너무도 살기가 싫다.

권총을 잡은 내가 그렇게 말했다.


하루하루가 그나마 견딜만 했다. 세상은 아직 아름답고, 듣지 못한 음악과 보지 못한 영화와 그림들이 널려있고, 아름다운 풍경들이 너무도, 내 주변에서조차 셀 수 없이 많았다. 무엇보다, 아직 나는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권총을 받기 전의 내가 말했다.


여태까지 내가 왜 참고만 살았는지, 당하고만 살았는지 너무도 울분이 터진다. 내 자신이 왜 참았는지도 나 자신을 찢어죽이고 싶을 정도로 원망스럽고 후회하고 있다. 왜 나는 그렇게 병신같이 당하기만 했지? 어째서? 진작부터 죽어버리고 싶었잖아. 이제 수단이 생겼으니 죽을거야. 반드시.

권총을 잡은 내가 말했다.


나는 남들을 너무도 좋아해. 내 주변 사람들을 좋아해. 그 사람들이 내 죽음으로 인해 받을 고통을 상상해보았어. 그리고 나는 단념했어. 비록 나 자신이 지옥불에 서서히 사그라들지라도 내 주변 사람들이 웃어준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견딜만 했으니까. 나는 애어른이야. 죽고 싶다는 생각따위, 현실로 일으키는 일은 없어. 절대로. 모든 것은 부질없는데 나 자신을 죽이는 것조차 부질없잖아?

운동장에서 다리가 어딘가에 걸려 넘어져 진흙투성이가 된 내가 말했다.












죽어버리자.

언젠가는 죽을 거였잖아.

죽고 싶었잖아.

너무도 외로웠잖아.

단 한 사람만이라도 너를 이해해줬다면 세상을 줬을거라는 너의 바램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먼지가 쌓여 부르터버렸잖아.

그녀를 그렇게도 그리워해서 썼던 글들 조차 이제는 한낱 지난 날의 치기어린 꿈에 불과하잖아.


네가 이 세상에 남긴 것은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까, 죽어도, 네가 맘에 걸려하는 네 주변 사람들의 고통? 그런거 없어.



죽어도 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끼기긱거리는 소리가 우퍼를 통해 들려오는 듯 무지막지했다.

서서히, 당겨져오는 압력이 손가락에 느껴져왔다.


앞으로 조금만 더 당기면,

난……





















아직 그녀를 만나지 못했어.

그게 너무도 억울해서 눈물을 쏟아버릴 것만 같았다.


내가 왜 그녀를 만날 수 없으면 안되지? 왜?

내가 그녀를 사랑까진 아니더라도, 그저, 죽기 전에 단 한번이라도 만나봤으면 좋겠어.


아니, 시도라도 해보고 죽었으면 좋겠어.


잠깐만.


나는 권총을 내려놓고는 휴대폰을 손에 쥐고 떨리는 손으로 급하게 그녀에게 카카오톡을 보냈다.





저..내가 뭔가를 잘못한건 알아. 말실수를 한 것도 알고. 잘은 모르겠지만, 알아.

날 차단했는지도 알어. 그냥 네가 잘 되길 바란 마음과 앞으로의 행복과 행운을 빌어주는 마음이었어.

잘 지내고, 건강해.


































카톡.

























고마워..







그렇게 난 세상을 다 가졌다.






금년 한 해의 엔진 조립 실습이 모두 끝나고, 뒷풀이를 했다. 치킨과 맥주를 먹었고, 강당 안에 울려퍼지는 과가科歌를 마지막으로 모두들 흩어졌다. 언제고 그랬듯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투명한 어둠이 얇게 펼쳐져 있었고, 이따금 별이 빛나는 걸 볼 수 있었다. 신호등이 파란부로 바뀌었고, 그 빛이 사글사글 산란하며 어둠을 비추었다. 횡단보도를 건너, 삼겹살 집을 지나, 저 앞에 아직 문을 닫지 않은 문구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구점에서 뭔가 찾을 게 있었다. 카운터 주변을 잠시 둘러보았고, 이윽고 유희왕 카드를 찾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 육 학년 때, 애들끼리 열었던 교내 대회에서 우승한 다음 날 어머니가 카드를 버렸던 것이 떠올랐다. 별의별 팩이 다 나와있었다. 그 중에서 그나마 제일 오래되보이는 것을 열 뭉태기 골라 값을 치르고, 주인아저씨의 궁금증 어린 시선을 등진 채 입구의 쓰레기통 옆으로 가 하나하나, 설레는 마음으로 뜯었다.


제발, 제발 있어라.






아홉 번째 뜯고서 카드를 넘겨보던 순간,

나는 원하던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죽은자의 소생.




END.

2013 04 06 02 14 土

[N]






네 생각이 났다. 미안하다. 너를 품은 이야기를 담은 글은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기로 했었지만,

너를 완전히 털어버리려면 이 방법이 나은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다.


미안하고, 해서는 안될 말이지만,

사랑한다…….

'작품 >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冬寒  (0) 2013.12.04
장葬  (0) 2013.11.23
균형 잡는 자  (0) 2013.11.23
일일사진  (0) 2013.11.23
브람스에 관한 추억  (0) 2013.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