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글
매장昧葬의 후일담後日談
작품/소설
2014. 11. 10. 02:54
흙이 덕지덕지 묻어 굳은 채로 떨어지지 않는 삽날을 발 끝으로 긁어내다 포기하고, 옆으로 던졌다. 쓰러지듯 주저 앉아, 주린 목을 적셔줄 웅덩이라도 있는 마냥 절실함을 담아 세 발짝 쯤 되는 거리를 기어가, 아직 옷도 입히지 못한 봉분을 최대한 팔을 벌려 안았다. 으레 이 다음은 모두들 울지 못해 죽은 귀신처럼 울더만, 어째 나는 그럴 기분이 들지 않았다. 최대한 울지 않고 그녀를 떠나 보내는 것이 그녀가 바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렇기에 될 수 있는대로 어딘가를 깨물었다. 입술이 찢어지고 이빨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내 것의 소리가 아닌 것처럼 멀게 들렸다. 어디선가 황조롱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귀뚜라미 소리와 비슷한 그 소리. 여름이 생각났다. 그녀와 함께 걷고팠던 그 여름날의 갈대밭. 함께 바닷가에 차를 몰고 가선 밀려오는 파도에 실린 바닷바람의 짠 내를 맡고 싶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에는 소금기가 아름답게 꽃송이처럼 맺혀 있었으리라. 그녀를 잠시 쓰다듬곤, 미안하다고 말하고 봉분을 등에 베고 누웠다. 야속하게도 하늘은 구름 한 점 끼어있지 않았다.
새벽 공기는 차갑고 누옇도록 짙어 금방이라도 소맷자락에 이슬 맺힐 것 같았다. 차갛게. 차갛게라는 단어를 하나 지어냈다. 차갑고 하얗게. 차갑고 누옇게. 차갑고……. 뒤엎어진 흙이 아직 추위에 굳지도 않았는데, 나는 왜 단어를 뱉어내고 있는가. 실소가 흘러 나왔다. 실소는 곧 울음으로 번졌다. 참기로 했는데, 참아지지가 않았다. 물러터진 입술의 상처 사이로 흘러 들어가 욱신거렸다. 그 욱신거림의 고동이 마치 심장 박동처럼 느껴져, 내 자신이 살아있음에 그리고 그녀는 누워있음에 더더욱 울었다. 의문이었다. 나는 계속 살아 숨쉬며 박동하고 있는데 그녀는 어찌하여 차디 찬 곳에 누워 있는가. 하다못해 그 여름, 바닷바람으로부터 맺힌 소금기가 가시기 전에. 아직 흙이 따뜻할 적에 묻어주고 싶었다. 야속하게도 옅은 안개마저 어디선가 흘러 들어와 그녀를 적셨다.
태양이 거세게 내리쬐는 사막, 가녀린 맨발로 눈부시게 아름답고 고운 모래밭 위를 걷는 그녀가 보였다. 하이얀 원피스를 입고선 멋드러지게, 가느라면서도 균형있게 살집이 잡힌 다리를 내비치며 머리에 쓴 챙 모자를 바로 잡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이리 오라며 손짓을 하며, 태양을 등지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이 보이질 않았다. 나는 태양더러 돌아서라 말했다. 태양은 돌아섰고, 마침내 그녀 머리 위로 드리워진 그림자가 걷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한낱 꿈을 꾼 걸까, 나는. 그녀는 꿈 속에서 나와 시간을 보냈고, 실제로는 같이 자리하지도 않았던 걸까. 차라리 그랬으면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아, 그녀는 진짜구나. 진짜 내 옆에 있었어. 하는 생각 또한 들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알아보려면 볼을 꼬집는다고들 하지 않는가……. 나는 그 물음으로 내 볼을 힘차게 꼬집었고, 정말로 아팠다. 아프다 못해 문드러질 것만 같았다. 황조롱이는 또 한 번 날아가며 울었고, 날갯짓으로 바닷바람을 실어왔다. 새벽의 선명하고 짙은 공기에서, 나는 울었다.
정신을 차리고 무릎을 짚고는 일어섰다. 어딘가 아픈 곳도 없고 지치지도 않았을진데 비틀거리며 간신히 일어났다. 그녀의 마지막을 나와 함께 한, 널브러져 있는 삽을 주워 발 끝으로 날을 털었다. 흙은 안개를 머금어 금방 떨어졌다. 힘 없이 삽을 땅바닥에 질질 끌고 가면 그녀가 내 등을 손바닥으로 세게 치며 '사내 녀석이 기 펴고 다녀야지?' 라고 할까봐, 없는 힘을 쥐어 짜서 삽을 어깨에 메고 걸어 갔다. 그녀의 아리따운 머리 위로 갓 심어놓은 풀들이 다 자라 그녀의 자랑이었던 기다란 머리카락 마냥 늘어질 때에 다시 올 것이다.
그렇게 멀어졌다. 그녀의 봉분이 등 뒤로 보였다. 닿지 않아도 보였다. 알 수 있었다. 돌아보고 싶지는 않았다. 돌아보지도 않을 것이다. 내 어깨 위로는 아직 그녀의 무게가 실려있다. 그녀의 무게. 그녀는 아직 내 위로 살아 숨쉬고 있다. 그녀의 생존에 대한 반증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아직 죽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는. 그녀……는.
열한 번째의 봉분을 만들면서, 나는 드디어 지쳤다. 추억과 망각 사이에 끼어 치던 발버둥. 종각에 다다른 것일까. 다시는 그녀를 묻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는 죽지 않을 것이다. 이미 다 묻었기에. 묻어버렸기에.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이제는 너를 묻지 않아도 되는 걸까?
그녀는 내게─
END
2014 11 10 02 52
[N]
'작품 >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흰 나비 춤을 추며 上 (0) | 2015.05.14 |
---|---|
그 해 가을 - 上 (0) | 2014.12.18 |
유리 구슬과 밤이 흐르는 곳 - 2 (1) | 2014.10.25 |
유리 구슬과 밤이 흐르는 곳 - 1 (1) | 2014.10.21 |
切段 (0) | 2014.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