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먼발치에도 눈이 내린다면

작품/소설 2016. 4. 7. 15:52

당신의 먼발치에도 눈이 내린다면

 

 

 

 

 

가늘게 잡히는 샤프펜슬의 느낌이 좋다. 그렇게 생각하며 이 글을 쓴다.

 

 

어두컴컴한 학교에서 끓인 라면 국물 안에서 이런 말이 보였다. 자기자신을 그토록 미워해본 적이 있나. 친구의 말이다. 난 뜨거운 응어리를 뜨겁게 빨간 성수로서 씻어내렸다. 첫 하강, 두 번째 하강.

 

선풍기 바람 앞에서 적당히 크게 볼륨을 높인 헤드셋을 끼고서 음악을 들었다.

Be, 그리고 오버. 여럿을 들었다. 눈을 감았다. 지휘했다. 키보드를 두들기고 드럼을 쳤다.

내 손끝이 지휘자 못지 않은 가녀림과 섬세함으로 4박자휘를 한다 라고 생각했고 그는 곧 그렇게 행해졌다. 섬세한 백조가 물돋움을 하는 듯이, 불우한 소녀의 판잣집에 천둥번개가 치듯이 나는 손을 움직였다. 손은 휘저어졌고, 나는 전해오는 파동에 스스로를 가누지 못하고 내 자신이 손에 종속되었다. 바뀌었다. 그리고 난 1분이 1분이 아닐 수 있음과 1초가 1초가 아닐 수 있음을 정확히, 아니, 이전보다 더 잘 알게 되었다(실제로 난 시간에 휘저어졌다).

 

 

 

그녀 생각이 났다. 내 생각이 났다. 여실히 보이는, 가능성과 불가능성의 스튜가 끓어오름에 나는 그 앞에 서서 국자로 요리지어 냉정이라는 잣대를 든 온정이라는 심사관 앞에 내놓았다. 세상에서 가장 불확신한 그 심사관이 안경을 고쳐잡았다.

 

앞에 보이던 천장이 천장을 넘어 아직 보지도, 듣지도, 그리고 심지어는 알지도 못하는, 그렇지만 실로 확실히 그렇다고 믿는(믿어지는) 그녀의 집에 다다랐을 때, 나는 문가에 서서 나와 같은 노래를 듣고 나와 같은 뇌수 속을 떠다니고 같은 별과 구름과 차다 만, 하지만 곧 차오를 달을 보는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먼발치에 서서 나에게 속삭였다.

 

내용은 뭔지 모른다. 백조는 날아갔다. 모비는 왜 그가 나를 두고 갔는지를 노래했다.

시간은 흘렀다. 이젠 아니었다. 그럴수도 있었다. 모기가 날 물었다. 그리핀이 힘차게 날아올라 공기를 그리고 바람을 솎았다. 청량림 한가운데 서서 가슴을 화알짝 펴고 겨울안개를 잔뜩 들이마시는 나를 보았다. 힘이 풀린다. 나른해진다. 그대로 녹아내리며 이 밤이 진다. 내 자신을 보았다. 검은 구름은 비킬 생각을 않지만 여전히 별들은 마디마디 총총히 구름보다 높이 박혀있다.

 

 

그녀 창가가 보였다. 벽돌부터 문귀퉁이 잡초까지. 이상하게도 내 얼굴 옆 그녀 얼굴은 그렇게 뚜렷하지 않았다. 멀어졌다. 멀어진 소설에도 시간은 펜을 댄다. 아침햇살 깊은 골목에도 이렇다할듯 자라는 풀은 드물지만, 마침맞게 보여져버린 이슬에 사랑은 웃다 지쳐 눈물 잣는다.

 

깊은 음악은 끝까지 달을 두르고 잠을 잔다. 나는 그녀를 안고서 멀어져갔다. 입맞추며 사라졌다. 끝에 가사는 ……없다.

 

그렇기에 난 이 하찮은 음악과 초가을의 선풍기 바람과, 그리고 구멍뚫린 천장에 기대어 그녀를 찾는다. 보이지도 느끼지도 못한다. 그렇기에 나는 어쩌다가 그녀 생각이 나면 이렇다할 생각 없이 이렇게 빌었었다.

 

 

 

당신의 먼발치에도 눈이 내린다면.

 

 

2011 08 26 02 33 AM

[N]


백업  20110902 2338 작성  20110826 0233 Hwp파일 작성 20110924 2232


스승한테 넌 느낌이 있어 라고 평가받은 작품이지만 지금 보니 고딩때 절 향해 이불킥 하고 싶네요

갯가재

작품/소설 2016. 4. 7. 15:51

등대 그늘녘엔 파도가 부딪쳐 스며든 짠내와 따개비가 덕지덕지 끼어 있었다. 그 중 한 곳을 골라 앉아 내다보이는 앞 쪽으로 파고 들어오는 곶을 바라 보았다. 평범한 능선의 산이 곶을 따라 저 편에 보였고 썰물이었는지 바닷가 아낙네들은 곶 근처 갯벌에 나와 물질을 하고 있었다. 습기와 소금기가 섞여 짬을 두고 불어오는 바람을 얼굴에 맞으며 가만히 무릎을 세워 그 위에 팔을 얹고 턱을 괴었다. 습한 바람이 말라가면서 스웨터에 서서히 말라붙은 소금 결정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방파제 사이사이의 검은 구멍에서 갯가재들이 나왔다 들어갔다하며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갯가재 한 마리가 이리저리 망설이기를 반복하다가 내 발곁에 다가와 가만히 멈췄다. 바닷가에 사는 다족류가 이렇게 가만히 머물러 있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저 가만히 보고 있었다. 그 곁시선으로는 아낙네들이 갈귀로 바지락을 긁으며 호미로 땅을 파 낙지를 잡아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파도가 코 앞까지 치밀어오르다 아직은 아니라는 듯 물러섰고 잠시 후 파도가 맘을 굳힌 듯 다가오자 아낙네들이 뻘에서 나와 바닷가에 세워져 있던 트럭을 타고 돌아갔다. 태양은 파도를 따라 불꽃 아크릴을 그려내며 서서히 바닷속으로 잠겨갔다. 어쩜 그렇게 연기도 나지 않고 스리슬쩍 도둑놈처럼 바닷속으로 슬며시 가라 앉을까.


그 사람과 왔던 바닷가였다. 물질하는 그 사람을 보며 앉아있던 등대 그늘이었고 그 사람이 방파제 이리 저리를 껑충껑충 넘어다니는 것을 바라보던 그 때 그 순간 그대로였고 그 이 가고 나서 눈이 내리는 겨울 바다가 보고 싶어 차를 달려 왔을 때도 항상 이 풍경 이 이미지 그대로였다.


스물. 그 사람을 기억이 나지 않는 계기로 만나게 되어 좋다고 전국을 떠돌아 다녔다. 루프트탑에 스키 기어가 달린 녹색 마티즈였다. 여름엔 에어컨을 틀어도 살며시 땀이 나고 겨울엔 히터를 틀고 창문을 꽉 틀어막아도 냉기가 살며시 스며오고 입김이 불어져 나오는 그 마티즈를 타고서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늙은 작가였던 그의 마지막 남은 원고료로 운 좋게도 풍경 좋은 방들만 빌려가며 이곳 저곳 기약없이 여유롭게 유랑했다. 그가 좋아하는 영화가 재개봉한다는 말을 들으면 가던 길을 돌아서라도 갔고 나는 잘 모르지만 언제 어디서든 쏜살같이 연락이 오는 그의 정보통으로부터 어떤 바다에 눈이 내리고 있다고 하면 금새 그 곳으로 차를 돌렸다.


그는 이따금 뱉어대는 피 섞인 가래와 잦은 기침을 빼고선 건강했던 사람이었다. 폐암이라고 했다. 멋스럽게 뒤로 쓸어 넘겨 자연스럽게 잡힌 회색빛 머리와 작가라는 인상 덕분에 그 잦은 기침도 뭔가 어울리는 듯 싶었다. 금방이라도 어떻게 될지 모르면서 담배는 어찌 그렇게 피워댔을까.


이 곳에 왔던 적이 세 번인가 됐을 것이다. 자주 들렀던 다른 곳보다는 적은 횟수지만 어쩜 이렇게 기억에 남을까. 비록 가을자락이라 눈은 내리지 않고 입김도 나오지 않지만 왠지 내 눈에는 선하게 함박눈이 하늘에서 내리며 갯벌에 쌓이는 광경과 그 사람이 갯벌 이리저리를 뛰어다니며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리며 어린 아이마냥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몸이 점점 더 안 좋아져 내리기 직전 차 안에서부터 그렇게 기침을 해댔던 그 이였는데 내려서 눈이 송송 내리는 그 갯벌 위를 팔 벌리며 뛰어다닐 때는 어쩜 그렇게 기침도 멎었던지.


그는 그 때 여행을 마치고 바닷가에서 돌아오던 길에 들른 휴게소에서 내가 두 손에 커피와 그가 좋아하던 찐 감자를 사오던 때에 차 안에 편안히 의자에 기대어 누워 있었다. 잠에 들었는지 알 수 없어 조용히 차 문을 열고 조수석에 앉아 조금 기다렸을까.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어 목에 맥을 짚어 보았고 손 끝에는 아무 느낌도 없었다. 나는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전혀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았었다. 정말로 내가 그 때 왜 그렇게 침착했을까. 그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 보았었다. 그는 마치 낮잠을 자는 것처럼 너무도 편안하게, 누가 봐도 방금 세상을 떠난게 아니라 단잠에 빠진 것 같이 누워 있었다. 웃고 있었다.


살며시 눈이 오기 시작한다. 갯가재는 눈송이를 맞더니 정신을 차린 듯 바르르 다리를 바삐 움직여 방파제 아래로 내려갔다. 등대지기가 내 쪽으로 걸어오며 열쇠로 등대 문을 따곤 안부를 묻고 춥지 않느냐고 했다. 난 곧 일어설거니 괜찮다고 했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곤 등대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올라가는 발소리가 멀어지며 맴돌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열쇠로 트렁크 문을 열고 체인을 채웠다. 마티즈는 여전히 자기 몸보다 긴 스키 기어를 위에 달고 있었다. 운전석 문 앞에 서서 마티즈를 둘러다보았다. 그리곤 운전석 안으로 들어가 핸들을 잡았다. 왠지 모르게 그의 자리에 앉아 그가 손 잡던 핸들을 잡고 앉아 있는게 큰 일 마냥 와닿았다. 시동을 키고, 히터를 틀었다.


히터를 방금 틀었던지라 차 안은 아직 차디 찼다. 들이쉬는 차가운 공기는 왠지 그 어린 날의 아이스링크장을 마주보는 통유리 창문에서 들이마셨던 공기와 같아 더더욱 폐부로 스미어왔고, 나는 잠시 핸들에 이마를 댄 채 소리 죽여 울었다. 그가 사그라들어 재가 되어 바다에 흩뿌려지던 날이 생각난다. 나는 그저 손을 앞으로 맞잡고 그가 날아가 바다에 스미는 것을 보고 있었고 스무 살이던 나와 나이 든 그와의 유랑을 두고 뒤에서 수군대던 이들의 말뜻이 들려와 말없이 슬퍼 했었다.


시동을 걸고, 브레이크를 풀고, 엑셀을 밟았다. 등대가 점점 멀어져갔다. 앞유리에 쌓이는 눈송이는 점점 거센 바람에 흩날려 머물지를 못했다.


END

노래 : 붕대클럽 - 불온한 바람

ハンバ?トハンバ? 「?

 

 

 

 

 

후기

요즘 들어 나이 든 작가나 기타 예술인과 함께 유랑하거나 여행을 다니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나마 욕구를 해소 해봅니다. 은교?

저 혼자 감상에 취해 쓴 글이라 제 글 고유의 단점, 즉 전 다 알고 느끼고 쓰지만 읽는 이는 서술된 내용에서 제가 느꼈던 만큼의 것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단점이 보이네요. 여전히.

, 글이 엄청나게 빠르게 나오는 건 아직 좋지만 이제 슬슬 느긋하게 쓸 때가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20141114 1256 20150504 1812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