雪遠 - 2

작품/소설 2014. 10. 21. 01:04

벽난로에서 타들어가는 장작 덕분에 집안에 조금씩 온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그녀는 여전히, 내가 앉아 있는 긴 쇼파 오른쪽의 페어인 작은 쇼파에 앉아 무릎담요를 덮은 채 몸을 앞으로 구부려 양손으로 찻잔을 잡고 멍하니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저 조용히, 맞은 편 텔레비전 위에 걸려 있는, 선생이 직접 친 사군자와 서체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感監無疎識. 선생님은 참 한자를 특이하게 쓰셨다. 그녀는 아직도 찻잔에서 조용히 피어오르는 김의 질감과 흐트러짐을 보고 있는 듯 조용했다. 내가 글을 쓰다 문득 천장을 향해 피어오르는 연기의 물줄기를 보며 생각에 잠기는 것처럼.


그녀는 어느샌가 찻잔을 비우고 다음 차를 우려내기 시작했다. 황새냉이였다. 차에서 흙냄새가 나면서도 살짝 산뜻하고 그와 동시에 침착하고 가라앉는 듯한 향이 났다. 그녀는 그렇게 눈을 감고 차를 음미하다가, 내가 찻잔을 다 비우고 내려놓을 즈음 자신도 그렇게 했다.
"선생님한테 말씀은 들었어요. 와주셔서 감사해요."
나는 그저 당연한 것일 뿐이라고 말하곤 잠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눈발은 유순해졌지만 그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혜인暳璘이에요. 별 반짝일 혜, 옥빛 린. 처음 절 보셨을 때 선생님이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선생님이 지어주셨다면……."
"네, 맞아요. 지금 열 아홉이에요."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퍽 맘에 드는지, 아니면 선생 생각이 났는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몇 시간만에 그녀의 얼굴에 어린 첫 미소였다. 그녀는 잠시 내가 그랬던 것처럼 창밖을 내다보며, 무릎담요의 폭을 살짝 여미곤 말을 이었다.

"선생님께서 절 길러주셨죠. 제 생부는 선생님의 교수 시절 제자셨다나봐요. 선생님을 따라 글을 쓰셨고, 그러다가 결혼을 하셨지만 글로만은 생계가 힘드셨는지 어떤 일을 손 대셨다가 저를 못 키울 형편에 놓이셨고, 절 선생님께 맡기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린 나이임에도 아무런 원망이나 증오 섞인 표정 없이 담담히 말해내는 모습에 나는 그저 굳게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아마 선생님이 몇 년 전에 알려주셨겠지.
"그렇게 여기서 자라왔죠. 선생님이 먹을 간 벼루에서 손가락으로 먹을 찍어내 장난을 치다보니 붓을 잡고 있었고, 선생님이 서재에서 흔들의자에 앉아 책을 읽으며 띄운 미소가 신기해서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선생님이 듣던 음악은 바깥에 내리는 눈. 휘몰아치는 바람에 하나되어 춤추는 풀밭. 이따금 불어와 창문에 달라 붙는 낙엽들. 너무도 선명하게 어울려서 그렇게 음악을 듣기 시작했죠." 그녀는 마치 젊은 미망인이 검은 옷을 입은 채 지난 삶을 읊조리는 마냥 무덤덤하면서도 선명한 기억과 전달력으로 말했다. 나는 문득 손이 허전해 찻잔을 다시 잡고 싶어졌다.
"선생님이 어째서 이렇게 거친 날씨에 바깥을 걷고 계셨는지가 궁금하실거에요. 그걸 듣기 위해서 오신 거이기도 할테고요."
말하지 않아도 그것 뿐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라는 말이 전해져 왔다. 또 다른 서남 선생님이 앞에 앉아 있는 것 마냥, 나는 그저 조용히 혜인의 말을 들었다.

"서재로 자리를 옮길까요?"
"응?" 갑작스러운 물음에, 아니, 물음이 갑작스럽다기보다는 갑작스럽게 말투에서 감정이 느껴져 당황스래 되물었다. 상냥함이었다. 그녀는 미소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유는 궁금하지 않았다. 그러고 싶던 참이었으니까. 무서움? 무서움이라기보다는 너무도 익숙함에 그저 약간의 기묘함을 느낄 뿐이었다. 선생님이 계신 것 같은 그런 기분. 자리에서 일어나, 텔레비전의 오른편으로 돌아 문이 나있는 서재로 들어갔다. 그녀는 잠시, 다시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겨 찻주전자에 물을 다시 받아 끓이며, 주방의 곁방으로 갔다. 무언가 뒤적이는 소리가 났다.

나는 서재 안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문을 마주보는 선생님의 책상과 그 뒤의 창문. 그리고 그 주변 벽의 꽉 들어찬 책장과, 지나다닐 수 있는 공간을 띄어놓고 놓여 있는 카우치. 그리고 작은 흔들의자. 책장 안에 꽂혀 있는 책장은 선생님답게, 전부 많은 횟수를 거듭하여 읽고 또 읽었기에 거의 다 헤져 있었다. 딱 한 권만이 멀쩡한 걸로 기억한다. 내가 아끼고 아끼던 노르웨이의 숲 한정판. 선생은 책은 책답게 읽어서 헤지는 것을 영광으로 안다고, 읽음으로서 책을 헤지게 하는 것은 책에 대한 죄악이 아니라고 하셨지만 나는 너무도 아꼈던 탓에 선생님에게 화를 냈던 기억이 있다. 철없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옆에, 움베르토 에코의 컬렉션이 늘어서 있었다. 계속 훑어보던 중, 왠지 모르게 책등이 빛이 바래지 않은 책 한 권이 더 보였다. 양을 쫓는 모험이었다.

"기다리셨죠."
그녀가 쟁반에 황새냉이 차와 귤을 내왔다. 귤...선생님의 소일거리 중 하나는 고구마를 굽고, 푸대기에서 차가운 귤을 한 바가지 꺼내와 책을 읽으며 보는 것이었다. 그녀도 선생이 앉은 흔들의자 옆 카우치에서 웅크린 채 귤을 까먹으며 군고구마 껍질을 까고 있었겠지. 그리고 다 먹고 나면 귤 껍질을 한데 모아 말려 차를 끓였겠지. 나는 조용히 그녀가 내온 귤을 마치 생채기 내면 안되는 소중한 것처럼 천천히 껍질을 까, 반절 나눠 그녀에게 건내고 나머지는 한 입에 털어 넣었다. 그녀는 조용히 한 알 한 알 떼어 먹었다.

"양을 쫓는 모험 말야." 양을 쫓는 모험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그녀가 마치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고양이처럼 나를 바라보았다.
"꽤나 좋아하는 것 같은데 말야." 그녀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내 말을 이었다.
"네. 아끼는 책이라서 선생님에게조차 선생님 스타일대로 못 읽도록 했어요." 나는 그녀의 말에 잠시 웃음을 터트리곤 노르웨이의 숲이 꽂혀 있는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뭐, 그러면 노르웨이의 숲도 못 읽었겠네?"
"네. 다른 출판본은 읽었는데 한정판은 아직…."
"읽어도 좋아. 다른 것도 아니고 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에 내가 전세낸 건 아니니까."
그녀는 같은 내용이지만 조금 다르게 번역이 되어 있고, 문장의 좁음과 글씨의 크기와 한 페이지에 있는 문장의 흐름과 페이지로 인한 짤림을 볼 생각에 설레하는 눈빛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알고 있느냐 하면, 내가 그랬으니까. 그녀도, 선생님의 제자이므로.
"아, 죄송해요. 어, 하려던 말로 돌아갈게요."
그녀는 갑자기 손사래를 치며 내게 사과를 했다. 역시, 아무리 어른스러워도 소녀는 소녀인 것 같다. 그깟 책 하나에 신나하고 있었나보다.

…그깟이라고 하기에는 나도 저랬었으니까 할 말은 없다.

"아침이었어요. 저는 방에서 일어나 눈을 부비며 선생님이 어디 계신지 둘러보았죠. 선생님은 흔들의자에 앉아 커다란 화첩을 한 장 한 장 조심스럽게,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시면서 보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제가 깬 걸 보시곤 잠시 책을 덮고, 같이 아침을 먹었죠. 제가 설거지를 할 동안 선생님은 다시 서재로 가셔선 한참동안이나 같은 장章을 보고 계셨어요. 그러더니 옷을 두껍게 차려 입으시며 제게도 잠시 밖으로 나가자고 하셨죠. 그렇게 저희는 현관으로 나가, 선생님은 서서 담배를 피시고, 저는 계단에 앉아 있었어요. 담배를 피우시는 걸 아마 며칠만에 본 것 같아요."
담배를 피우시며 감정에 젖어 계셨을 선생님의 눈동자가 떠오른다. 살짝 미간을 찌뿌린 채, 모든 감각. 불어오는 바람, 시야에 보이는 것들, 바람 소리, 차가움. 담배를 피우실 때에는 모든 걸 한 번에 느끼시려고 하셨다. 나도 어쩌면 닮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더니 제게 기다리라고 하셨어요. 기다려라. 황새냉이 차를 우려 놓고. 라고 하시며, 담배를 끄시고, 눈밭을 향해 걸어 나가셨죠. 저는 선생님을 말리고 싶었지만, 뭔가, 뭔가…." 그렇게 그녀는 말 중간에 울먹이다가, 기어코 울음을 참지 못해 끅끅거리며 울었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울음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창 밖을 내다보며 안주머니에 들어 있는 담배 생각이 났을 뿐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차가 식을 때까지 울었다. 우습게도, 관운장의 고사古事가 생각났다. 차가 식기 전에 돌아오겠소. 붙이기에 진부한 문장이지만, 슬프게도 선생님은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황새냉이의 꽃말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무치는 그리움, 그대에게 바친다.
황새냉이의 꽃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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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006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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雪遠 - 1

작품/소설 2014. 10. 21. 01:03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슈?"

"예?"
옆 자리에 앉아있던 문화부 박윤수 기자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나는 그저 당황 그 이상의 것이 얹어진 마냥 제자리에 굳어버렸다.
"오늘 뭔가 발표하실게 있다던 갑자기 서남書襤 박사님이 잠적하셨잖우. 이유가 뭔 것 같은지……."
"정말입니까? 최근 연락해본지는 좀 되었습니다. 게다가 서남 선생님 계시는 인제에 눈이 많이 오고 있다고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지금 저-어기 떠들고 계시는 학회장님이 빨리 입 닫기만을 바라고 있겠구먼."
그가 아무 것도 비춰지지 않고 있는 프로젝터 스크린 앞에 서서 마무리 멘트를 하고 있는 침심沈心 문학연구회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는 그 앞에 두 줄로 늘어서 있는 책상 그 맨 끝에 앉아 있었다. 나는 계속 그의 입술과, 등 뒤에 있는 출구를 번갈아 의식하며 초침의 움직임 한 번 한 번을 신경쓰고 있었다. 목이 말라왔다.

"……그러면 이제, 서남 선생님이 불참하신지 두 시간이 지났으므로 일단 여기서 마칩니다."
협회장의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나는 자리를 박차고 문을 열고 달려 나갔다. 계단을 두 계단 세 계단 씩 성큼성큼 뛰어 내려가다시피 하며 지하 주차장으로 달려가 자가용의 문을 열고 시동을 걸었다.

인제군에 다다르기도 전에, 눈송이는 저번에 서남 선생님을 찾아 뵈었을 때보다 더 굵고 빼곡하게 하늘을 메우며 지상으로 강하降下하고 있었다. 초조하게 핸들을 잡은 손의 손가락을 툭 툭 굴리며 신호를 기다리던 즈음, 휴대전화가 울렸다. 운전 중이라는 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몇 일간 물 한 방울 마시지 못한 사람이 물을 본 듯 날렵하고 간곡하게 전화를 조수석 시트 위에서 낚아채 받았다. 인제 백병원이라는 다섯 글자가 귀에 스쳐 지나갔고, 나는 빨간불과 눈이 쌓인 도로임에도 불구하고 핸들을 직각으로 틀었다.

"지하 1층으로 가시면 되요."
간호사의 말을 듣자 마자 곧장 안내데스크에서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21F. 간호사에게 선생님의 성함을 말하자마자 나온 번호. 방금 전에 실려오신 모양인지 간호사가 곧장 알려주었고, 나는 그 번호의 병상을 찾아 응급실 내부를 샅샅이 둘러보았다. 21A……E……F.

F에 시선이 멈춘 순간, 어디선가 멀고도 가까운, 누군가가 떠나는 걸 남겨진 이들이 모두 슬퍼하는 울음 소리가 들렸고, 시선을 침상 번호에서 서서히 침상쪽으로 내리자, 익숙하지만 아주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있던 한 노인과 그의 오른쪽에 그의 손을 붙잡고 애써 소리 죽여 울다 끝내 터져나오는 울음에 몸을 맡긴 한 아가씨가 보였다. 沈心. 마음에 잠겨라. 네가 느끼는 모든 것들에 잠겨 들어가라. 그것이 곧 너이고 그것이 곧 네 글이다.

내게 그렇게 가르치셨던, 글밖에 모르던 어떤 위대한 청년 소설가는 늙은 얼굴로 병상에 누워 심박 측정기의 이묘異妙한 곡소리와 함께 세상을 떠나셨다. 의사 말로는 심각한 동상과 저체온증이란다. 나는 텔레비전이나 소설에서 어째서 살리지 못했느냐고 의사의 멱살을 잡는 유가족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선생님의 지인 분들의 의견에 따라, 자식이 없는 선생님의 장례식의 상주가 되어 삼 일간 식을 치르고, 육신에 얽매이지 않고 죽고 나면 하늘을 날아보고 싶다. 궁금하다. 라고 하신 말씀처럼 굴레를 벗겨드리고 나서 마지막까지 선생님 곁에 있던 아가씨와 단 둘이서 선생님이 평소 좋아 하셨던, 탁 트인 전경이 내다 보이는 전망 좋은 산등성이의 절벽 부근에 선생님의 유골을 묻었다.

그녀는 그때까지도 아무 말도, 아무런 감정도 없어 보이는 표정으로 있었다. 내가 눈이 쌓여 곧 얼어붙을 땅을 삽으로 파려 할 때, 그녀는 아주 조용하고 나지막한 움직임으로 눈밭 위에 꿇어 앉고는 잠시 나를 올려다 보더니 세수를 할 때처럼 두 손을 정성스레 모아 눈을 뜨고, 옆에 붓고. 뜨고, 붓고를 반복했다. 나는 잠깐 입을 열었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옆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눈을 퍼낸 손이 창백해졌을 뿐, 떨지도 않고 삼십 분 동안 눈과 땅을 파내어 선생님을 묻었다. 그리고 걸어 내려왔다. 나는 왠지 '일을 마친 일꾼처럼' 삽을 들거나 메고 내려가는 것이 탐탁치 않아서 그냥 어디 한 구석에 버리고, 먼저 내려가기 시작한 그녀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녀는 내 차의 조수석에 오를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생이 묻힌 곳을 의식하면서 운전을 하다가, 어느새 멀어져 갈 즈음,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서남 선생님과 어떤 관계…인지 물어도 될까요."
그녀는 조용히 손을 살며시 깍지 낀 채 배 위에 놓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녀는 몇 분간 말이 없었다. 조용했다. 가을에 이미 모든 곡식을 수확한 논에 수북이 쌓인 눈. 광활한 들판과 눈을 덮어 쓴 눈꽃가지들과 나무들. 선생님의 죽음. 몇십 년은 어긋나있는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한 이질감이 들었다.

그 이질감 속에서, 황량한 감정과 텅 비어 있는 눈의 사막을 보며 달리며 나 자신의 존재감마저 내 머릿 속에서 잊혀갈 즈음, 그녀가 나지막히, 소리가 발發하고 나서 얼마 후 알아들을 수 있을 그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자…에요."


1


나는 왠지 모르게 그녀가 그러고 싶어하는 것 같아 선생이 살던 산 속의 집으로 차를 돌렸다. 산 깊숙한 곳으로 차를 끌고 올라가면 울타리도 없고 근처에 아무런 나무도 없는, 마치 산 정상과 같이 느껴지는. 산이라기보다는 오름의 꼭대기에 집을 지은 듯한 곳으로. 나는 멀찍히 차를 대놓고 시동을 끈 다음 잠시 아무 말도 없이 선생의 집 주변의 눈밭을 차창 너머로 바라보았다. 저 곳이, 왜인지는 모르지만, 선생님이 그 폭설 속에서 깊은 발걸음으로 헤쳐나가다 쓰러진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그녀는 출발했을 때와 같은 자세로 가만히 있었다. 조용히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 오르락 내리락하는 작은 가슴팍만이 움직일 뿐이었다. 그러다, 그녀는 안전벨트를 풀고, 조용히, 나비와 같이 신중하다기보단 조용한 움직임으로 차 문을 열고 눈을 밟았다. 뽀드득하며 그녀의 신발 밑창 아래에서 눈송이들이 우그러들다가 부수어졌다. 나도 그녀를 따라 차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잠시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고,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저만치에 있는 선생님의 통나무집을 내다 보았다. 꽤나 멋지게 지어진 집이었다. 눈이 수북히 쌓인 지붕이 보였다. 그녀는 걸음을 옮겼고, 나는 잠깐 뛰어나가 그녀의 앞에서 그녀가 쉽게 걸을 수 있도록 발자국을 남기며 눈을 헤쳐나갔다. 그녀는 아무도 없다는 듯, 내 뒤를 따르기보다는 그저 그녀의 페이스대로 집으로 걸어갔다.

서남 선생님은 절대로 집 문을 잠그지 않았었다. 잠금장치를 안에서 열고, 밖에서 열쇠를 잠그고. 그런 사소한 행동 하나 하나가 생략될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를 느끼고 싶으셨던 분이었다. 내게 글을 가르치고, 지금의 내가 있게 해준 분. 그런 분의 제자. 나는 문 앞에 서서 그녀가 오기를 잠시 기다렸다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며칠간 비어 있던 탓인지 집 안은 바깥과 다름없이 쌀쌀했다. 나는 평소대로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왼쪽에, 바깥을 내다볼 수 있게 나있는 거실의 커다란 창문 옆 소파에 앉았다. 그녀가 따라 들어와 현관문 바로 옆의 벽난로에 파이어스타터로 불을 지피고 구석에 쌓여 있던 통나무 두 조각을 가져와 불을 먹인 다음 세 조각을 더 넣었다. 그리고나서 벽난로가 있는 벽을 따라 걸어가다 오른쪽의 주방으로 들어가 물을 끓였다.

선생이 마시던 둥굴레차는 뒷맛이 달달하지가 않아서 좋았다.                                                                                                20141003 0245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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