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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설에 해당되는 글 24건
- 2013.11.23 균형 잡는 자
- 2013.11.23 일일사진
- 2013.11.23 권총을 배달받은 어느 날의 사나이
- 2013.11.23 브람스에 관한 추억
글
균형 잡는 자
태초의 사흘, 온 우주는 무한한 정지에 휩싸여 있었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기에 그 곳은 크기나 깊이라는 잣대를 댈 수조차 없는, 무한히 0에 가까운 것이었다. 사흘이라는 시간도 어느 누군가보다 조금 더 위대한 그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에게 이르기 쉽도록 어림잡은 것일 뿐, 그 시간도 잡아먹힐 무無의 사건 동안 어떤 단위의 시간이 흘렀는지는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었다.
태초의 나흘 째. 사흘의 다음. 3시간의 다음. 3분의 다음. 3초의 다음. 그 아래로 무수히 쪼개진 세 번째들의 다음, 우주는 창조하기 시작했다. 우주 자체를 무대 삼아 누군지 모를 누군가가 창조하는 것이 아닌, 우주 스스로가 무엇인가를 창조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 창조는 앞의 사흘 동안의 시간의 깊이에 비하면 턱없이 미약한 것이어서 그 창조는 우주 창조의 거룩함을 떠들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는 무시당하였다. 혹자는 그 미약함이 그 우수한 시간 층의 배열에 덮여 증식한 결과가 창조의, 과정에 비해 비약적인 수준의 결과물들의 시발점이라고 말했으나, 그 자들은 대부분 무시되었다.
태초의 아흐레 째. 미약하기 짝이 없는 우주의 처녀창조의 다음. 우주는 하나의 기관을 짜내었다. 폭발과 충돌과 변수와 의도가 뒤엉켜 우주 그 자신의 눈으로 보면 더럽다고 생각 되어질 정도로 유성油性 물감들이 수면에 뒤엉켜있는 모습에 비유할 수 있을 난장판이 만들어졌다. 그 난장판 속을 비집고 하나 둘 겨우 자신의 몸을 추스른 항성과 행성들은 마찬가지로 젖먹이인 서로끼리 뭉쳐 빙글빙글 돌며 일종의 족族을 형성했다. 수 억, 수 조, 수 경의 족들이 우주의 안속에서 떠돌아다녔다. 우주는 무한한 포만감을 느끼며 흐뭇해했다.
태초의 스물여덟 번째. 족의 형성과 우주의 그럴싸한 화장의 다음. 우주는 왠지 모를 기묘한 공허함을 느꼈다. 사실은 그(녀)의 안에 셀 수 없는 그(녀)들이 떠돌아다니며 쉴 새 없이 재잘거리고 노닥거리고 웃고 던지고 싸고 마시고 쥐어박고 자고 있었지만, 언젠가 선대에 있었다고 선문답 되어진, 그(녀)와 같은 존재들의 의무감 비슷한 것이 그(녀)를 덮친 것 같다. 그 의무감과 그것으로부터 비롯된 공허감은 그(녀)로 하여금 무언가 살아있는 것을 만들도록 하였다. 살아있는 것의 정의는, 그(녀)의 안에서 그(녀)의 ‘모든’ 규칙 아래에 살아 숨쉬는, 수동적인 존재의 반대의 것이라고 일단 그(녀)는 정의하였고, 그것을 기반으로 그(녀)는 창조하였다. 여태껏 그(녀) 주변에 있던 것과는 최소/최대 크기가 남달리 다른 물체를 수많은 실험장에 풀어놓으면서 그 의무감은 조금 옅어졌다.
태초의 백 아흔 세 번째. 창조자의 의무감과 우주적 균형감의 피조물이 탄생하고 번성하기에 이른 다음. 우주는 그(녀)안에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관심을 오롯이 그 자신이 모두 감당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자신이 창조한 어느 생물체의 기초적 베이스로부터 비유하자면, 이미 그(녀)는 모든 창조성과 감수성이 서서히 감퇴되기 시작한 인생의 중간쯤에 와있는 것 같다는 판단이었고, 그 판단에 대한 반증으로 그(녀)가 그 즈음에 창조한 생명체중 몇몇은 균형에 맞지 않아 되돌려놓았다. 없던 일이었다. 우주는 그(녀)의 기초 중에서 가장 우월하면서도 균형에 어긋나지 않는 내외적 능력을 갖춘 생명체를 족장族長의 수만큼 창조하여 그 족장의 오두막 중앙, 깊숙한 곳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녀) 자신을 그 수와 그 자신만큼 나누어 자신과 연결하지 않고 어떤 쪽으로든 진보가 가능한 기초적인 자신만을 하나하나 그 생명체에 심고는, 그(녀) 자신은 작은 조각 하나만을 가지고 창조와 고뇌와 상념의 모든 과정을 잊고는 자신이 창조한 세계가 돌아가는 것만을 바라보기로 하였다.
태초의 이백 쉰 세 번째. 침묵 속에 이루어진 우주의 은퇴선언과 파견자들의 첫 업무 시작 다음. 나는 그(녀)로부터 받은 모든 것을 바라보았다. 이 행성은 물이 육지보다 대략 1.8배쯤 많은 듯 했다. 자세한 비는 곧 있을 사흘쯤의 탐사로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녀)는 우리에게 우리가 살아갈 곳의 자세한 정보 대신 탐사를 지시하였고, ‘잘 부탁한다.’라는 말을 끝으로 우리를 내려놓았다. 그렇게 우리의, 아니 나의 영원한 일은 시작되었다.
균형 잡는 자
Stabilizer
----X:O / X- / XX
그(녀)가 미리 해놓은 작업 덕분에 이 행성에는 이상하리만치 균형이 잘 잡혀 있었다. 내가 내려놓아진걸 알아차리고 나서 나는 하나의 행동과 둘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행동은 즉각 이 행성의 생태계와, 특정 종/군/류의 번식 현황과, 온도/습도/대기 두께의 측정 등등 유지 보수 관리에 꼭 필요한 것들의 역사적인 첫 번째 확인이었고, 생각은 ‘그(녀)는 성별이 있다면 무엇일까?’ 라는 것과 또 하나는 ‘왜 이 족族은 족장이 항성이 아니고 행성일까’ 라는 것이었다.
첫 번째 생각은 그냥 내 자신이 마음 가는대로 그녀라고 부르기로 했다는 것으로 해결했고, 두 번째 생각은 아마 이 족은 항성에는 생물이 살 수 없고 행성들 중에서 이 행성만이 생명 창궐에 적합한 환경을 부여받았나 라고 추측하여 해결하였다. 그렇게 세 가지 일을 해결하고 나니, 더 이상 내게는 당장에 닥친 과업이 없는 것 같아 잠을 청했다. 태생이 우주로부터인지라,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한 나로서는 일 또는 침묵밖에 몰랐고, 침묵은 곧 잠으로 통용되었다. 저 시린 혹은 뜨거운 공허함 속에서는.
----X:O / OO / XO
침묵을 푼 건 아마 이 행성의 대륙이 셀 수 없이 뒤틀리고 나서일 것이다. 종족 존속이 어려울 정도로 이상하리만치 커진 어느 조류의 날개를 적당히 줄이고, 침엽수 생태계가 파괴될 정도의 용각류龍脚類 번성에 대해서는 용각류들 스스로도 터무니없이 길어진 목의 길이에 각종 생물학적 질병을 수반하고 있었으므로 특별히 체중이 많은 종에 한해서만 멸종 쪽으로 가닥을 잡았고, 나머지 아종亞種에 대해서는 무난한 균형이라 생각되어 놔뒀다.
생각해보니 내가 곧 그녀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그녀를 주체가 아닌 객체로 인식할 수 있는 걸까? 용각류 중 우월한 목 길이를 가진 종이 서서히 멸종해 가는걸 지켜보면서 생각했다. 온도와 습도의 균형을 바다 한가운데의 태풍이 오른쪽에 있는 대륙을 휘젓는 것으로 맞춰감과 동시에 나는 그 궁금증을 되씹어가며 시간을 보냈다. 곧 지난번과 같이 비정상적인 기온변화가 있을 것 같다. 균형에는 맞지 않는 일이지만, 내 안의 그녀가 이르길 그것은 먼 미래의 균형에 관여하는 일이라 하였다. 고로 나는 개의치 않고 다시금 침묵하였다.
---OO:X / OO / OO
그 먼 미래로 흘러가는 불균형이 몇 번이나 더 있은 후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자그맣고 털 난 피조물들이 희뿌옇게 대륙을 채울 정도로 번성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습성을 대군집大群集에서 소군집小群集으로 조정하였고, 곧 하위 생태자가 최상위 생태자를 덮치는 일은 그리 자주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거대 생물의 시대는 시행착오를 거쳐 지나갔고, 이제 한 군락으로 지역 생태계를 위협하는 정도의 거대 생물은 탄생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일이 다듬고 깎고 줄이고 늘이고 찌우고 덧대고 죽이고 빚으며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왜 모든 생물들을 균형 잡힌 하나로 대체하지 않는 거죠?
그러자 그녀가 내게 빛을 내리며 일렀다.
창조자의 의무란다. 창조자는 모든 것을 빛내며, 최대한 적은 것을 그늘지게 하고, 최대한 넓은 곳에 그 빛을 내리느니라. 네 물음은 일단 빛은 하나의 빛깔로서 기워져 있는 게 아니라는 이름에서부터 대답할 수 있느니라.
그녀가 그렇게 이르자, 곧 그것이 참되게 되었다.
---XX:O / XX / OX
그녀의 이름이 있은 후로 단 한 순간도 난 침묵을 행하지 않았다. 마치 그녀가 이른 것들은 내게 나 자신이 되어 지킴과 수행을 강요받듯 느껴졌다. 모든 것을 빛내라. 모든 피조물들은 적어도 하나씩의 빛을 품고 있게 되었다. 최대한 적은 것을 그늘지게 하라. 모든 피조물들은 많아야 다섯 이상의 천적을 갖게 되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균형에 의해 그 불리한 시대와 장소를 타고 난 피조물이라 할지어도 그늘에서까지 빛을 뽑아다 주었다. 그리고, 최대한 넓은 곳에 그 빛을 내리라 한 이름에서 난 다른 행성의 예와는 다르게, 나는 저 370 하타나 되는, 대륙 사이에 끼여 솟아오른 웅장한 산맥의 꼭대기에서부터, 537 하타 깊이의 빛이 닿지 않는 곳에까지 생명의 빛을 내렸다.
날개달린 것들은 가급적 곤충과 열매, 풀뿌리를 먹도록 하여라.
내가 그렇게 이르자, 곧 그렇게 되었다.
무리 짓는 것은 섭리에 따라 그 이득만큼의 단점을 가지리라.
그렇게 이르자, 곧 그렇게 되었다.
하나를 버리면, 하나를 얻으라.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처럼 참되지는 않았다.
---XX:X / XO / XO
조각칼을 쥐듯 쥐되, 그것에 칼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말도록 하여라. 생명을 다루는 것은 마치 네 손아귀를 암컷의 자궁과 같이 하여, 그 안에서 웅크린 아기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스러워야 하느니라. 내 안의 그녀가 말했다. 오두막 안의 온도가 조금 올라가 후끈거렸다. 아마도 조만간 어딘가에 화산이 폭발할 모양이리라. 눈을 감고, 손을 들어올렸다. 우상귀에서 좌하귀로 날을 세워 그었다.
밭을 일구는 한 종족이 보였다.
--OXX:O / XX / OX
첫 번째로 문명에 의해 멸종한 종족이 보고됐다. 나는 열대우림의 한 구석진 곳에 하나의 씨앗을 심어, 비를 뿌렸다. 조만간 싹이 트리라. 그녀는 자그맣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온 우주가, 들이쉬고, 내쉬었다.
--XOO:X / OO / OX
바다의 왕자 하나가 문명의 창날 아래에 모습을 감추었다. 난 그 가녀린, 명이 다 한 종의 거두어진 씨앗을 조심스레 손아귀에 담았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불렀다.
이 아이를 어찌 할까요?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그녀가 일렀다.
가게 두거라.
평소의 그녀답지 않은 간결함과, 냉정함이 이름 속에 스며들었다. 닿아온 차가움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그대로 손아귀에 담긴, 이 세상 그 무엇보다 따스한 한 종의 응축된 씨앗을 내려다보았다. 잠시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뱃속을 열어 그 안에 살포시 놓고 닫았다. 따스함이 온 몸에 퍼졌다. 조만간 싹 틔울 날이 있으리라.
--XOO:X / OO / XO
문명으로 번성한 한 종족에 관심을 그다지 갖지 않는 것이, 족장의 관리자로서 내려온 자의 합당한 태도인지가 궁금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문명보다는 원초적인 태초의 따스함을 품은 아이들이 더 관심이 갔기 때문이다. 그녀의 것. 아무 것도 스치지 않은, 오직 그녀 자신이자 족장의 바람과 흙과 물과 비와 눈과 천둥과 화염이 스친 것만이 사랑스러웠고 손에 닿았다. 그와 동시에, 성스롭게까지 내게 비쳐지는 이 피조물들에 상처를 내는 문명이 증오스러웠다.
이 나의 감정이 합당하고 옳은 것인지 그녀에게 물었지만, 그녀는 답이 없었다. 족장에게 물어볼까 했지만, 우주의 가칙家則에 예외인 이 족장은 권한이 없는 것인지, 혹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인지 항상 침묵했다.
그 생각을 함과 동시에, 항상 그랬듯이,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듯, 하나의 생명의 씨앗이 거두어져, 내 안에 품어졌다. 나는 내 종족의 최초로 눈물을 쏟아낸 자가 되었다.
--XXX:X / OO / OO
충분히 수고했다. 이제 내가 얼마일지 모를 시간동안 그랬듯, 너도 충분히 자둘 필요가 있어 보이는구나.
그녀가 일러왔다. 나는 눈을 끔뻑거리며 두리번거리곤 대답했다.
어머니.
난 어느새 그녀를 어머니라 부르기 시작했다.
어머니. 전 잘 수가 없습니다. 모든 생명이 균형 잡힌 것이어야 하듯 모든 생명의 죽임과 죽음은 합이 영零이 되어야 하늘, 어찌하여 어머니께선 저 하나 아래에 스러진 수백의 것의 합을 영이 아니라 부정하십니까. 전 잘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답하였다. 우주가 하나의 눈이듯 한번 크게 끔뻑거렸다.
흐르는 물과 같이. 뻗는 뿌리와 같이. 박히는 번개와 같이. 솟아오르는 화염과 같이. 자연스럽게, 네가 원하는 대로 흐를 것이니라. 그러니, 어서 자두어라.
그녀가 그렇게 이르자, 곧 그것이 참되게 되었다.
-XXXX:X / XX / XX
눈을 떴다. 오두막이 너무도 뜨거웠다. 나는 눈을 감고 온도를 낮추려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다시 눈을 떴다. 내가 누워있는 돔의 벽 곳곳에 툭 튀어나온 송곳과 그것을 중심으로 퍼진 균열이 보였다. 붉은 빛 세상이 눈에 띄었다. 풀 한 포기 없이 파인 대지와, 송곳과 어느 둔탁한 덩어리가 땅을 파고든 모양만이 대지에 남아있었다. 대기는 검게 물들어 있었고, 나의 마지막 씨앗들이 내려갔어야 할 그 마지막 숲도 헐려있었다.
눈을 끔뻑거렸다.
어머니?
그녀는 답이 없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세차게 불러보았지만, 여전히 무언無言이었다. 균형은 없었다. 천칭을 대볼 생명은 오직 셋뿐이 남지 않았다. 그중의 하나를 보자마자, 나는 솟구쳐 오르는 무엇인가에 휩싸였다.
본래의 모습 따위는 없었다. 그것들은 모두 생명이 아닌 생명이었다. 무엇인가에 생명을 감싸, 그것을 자신인 마냥 으스대고 다녔다.
어머니.
그녀는 여전히 무언無言이었다.
XXXXX:O / OO / OO
조각칼을 쥐듯 쥐되, 그것에 칼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말도록 하여라. 생명을 다루는 것은 마치 네 손아귀를 암컷의 자궁과 같이 하여, 그 안에서 웅크린 아기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스러워야 하느니라. 내 안의 그녀가 말했다.
손아귀.
그 안에서 웅크린 아기.
자궁.
생명.
칼.
눈을 떴다. 송곳은 온데간데없었다. 대기는 하이었고, 비가 내려 바다를 씻기고 있었다. 족장은 벗겨진 가죽을 서서히 끌어 모아 추스르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손에 가득 감겨있던 가죽의 한 뭉텅이를 그에게 내어주고, 미안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아무런 변화 없이, 그 가죽을 받아 살을 이었다. 여기에 풀을 심어라. 단지 이 한마디를 했을 뿐이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내가 도륙낸, 기억나지 않는 무엇인가의 수컷과 암컷이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손아귀 안에 웅크린 아기. 생각했다. 기억했다. 저 둘을 무無로 돌려버리려고 하기 직전에, 나는 그 둘의 눈물과, 서로를 껴안은, 잘 알지 못하는 어느 감정이 내 가슴을 파고드는 날카로움을 기억했다. 비교해보니 내가 그녀에게 품은 감정과 비슷했다. 그들의 생명을 감싼 어느 반질반질하고 딱딱한 뭉텅이들을 보자, 그녀의 말이 떠올라, 그들을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손아귀 안에 웅크린 아기 같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이 족속들이 나의 씨앗과 족장의 모든 것과(심지어 오두막까지도), 그녀의 업적을 결딴낸 것에 대해 기억해내는데 성공했다.
손을 들어 그들을 가리켰다. 족장은 내 옆에 웅크려 앉아 아랫부분의 가죽을 잇다가, 나를 올려다보곤, 다시 가죽을 이어갔다. 허공에 하나의 점을 찍고 들려있는 손의 끝은 처참함을 품고 있었다. 떨었다.
손아귀에 웅크린 아기.
그녀의 자궁 안에 웅크린 내가 보였다.
나는 그 자리에 쓰러져 앉아 그대로 잠을 자기로 했다. 너무도 생각할게 많았다. 너무도 생각하기 싫었다. 결국, 잠을 자면 해결되는 것이다. 잠을 자고 싶었다. 잠을 잔다. 눈을 감는다. 눈을 뜬다. 족장이 다 이어진 몸을 둘러보다 일어나 몸을 흔든다. 풀잎이 흔들리며 바람소리를 낸다. 나머지 둘이 눈을 뜬다. 쪼고, 다듬고, 파고, 돌리고, 붓고, 치고, 으깨고, 치댔던 내 모든, 그들에게서 알게 된 그녀를 향한 나의 감정의 귀결.
그들이 눈을 뜨고, 서로의 손을 맞잡고, 서로의 다리를 꼬고, 하나는 솟구치고 하나는 누워, 풀잎을 스치며 족장의 배꼽 위를 구를 때.
나는 그렇게 눈을 감았다.
그녀의 품에 안기어, 쓰다듬어지는 머리를 느끼며.
오두막의 불을 껐다.
태초의 셀 수 없는 영겁이 지나고 난 다음.
온 우주는 무한한 생동과 정적을 내포한 부동不動중이었다.
다음 날의 다음 날의 다음 날이 반복되어가며 우주, 즉 그(녀)는 서서히 굳어가는 몸을 어루만지다 천천히 식어갈 준비를 했다.
만 아홉 번째로 식은 족장의 오두막을 내다보자,
웅크린 채 돌이 되어 굳어있는 파견자와 그 옆에 서있는 족장이 보였다.
족장은 그(녀)가 보였는지, 고개를 쳐들곤 끄덕였다.
이 행성의 세 번째의 지혜가 사라졌소. 바다에서 무리 짓던, 곧잘 웃고 날 간질이던 그 고래의 아종亞種과, 당신의 자식이 멸절하려다 관둔 두 발 포유류. 그리고 이, 당신의 파견인.
그(녀)는 웃었다.
드디어, 알게 되었다.
크게 웃었다. 온 우주가 진동하였다. 깨어진 부동에 씨족과 족장들이 화들짝 놀라 살짜쿵 움직였지만, 별다른 이변은 없었다.
드디어, 운명이라는 것을. 순환이라는 것을 이해했다.
균형과, 가운데와, 적당함과, 중간과,
쓰여짐과, 사슬과 띠와, 운명과, 순환이라는 것을 알았다.
온 우주의 창조자답지 않은, 치우침을 품고서, 그(녀)는 차갑게 식어갔다.
웃음을 머금은 채로, 만 아홉 번째의 파견자를 끌어안고서.
족장이 마지막 두 생명을 내려다보았다.
잠든 암컷의 허벅지에 흐르던 하얀 액체를 풀잎으로 닦아내었다.
족장은, 싸늘하게 식은 오두막에 서서, 어느 갈라지고 오래 된 돌덩이를 내려다보며 웃으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END.
2013. 02. 06.
01. 32. 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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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사진
사진 찍으러 왔나? 나는 선반 위에 놓인 자일리톨을 한 움큼 털어 씹으며 젊은이에게 물었다. 둥글둥글한 인상이었다. 조금 살이 붙어있었고, 그 살들만 특히 볼살을 조금 빼면 날카롭고 멋있는 생김새가 될 것 같았다.
네. 여권사진 찍으려고요. 젊은이가 묵직하면서도 나긋나긋한 톤으로 말했다. 전화선 너머로 여자 여럿 울렸을 목소리같았다.
저기 앉게. 나는 사진기 앞에 있는 삼발이 의자를 가리키고는 목을 돌려 뼛소리를 내곤 잠시동안 바깥을 바라보았다. 비둘기 두세마리가 저 골목길 입구에서부터 날아 전신주를 훌쩍 넘어갔다. 몸을 돌려 사진기 앞에 섰다. 초점을 맞추고, 셔터를 반쯤 눌러두었다.
좀 더 웃어. 그려. 그렇지. 인상 좋네. 찍겠네. 팡. 부드러운 풍선이 터지는 소리가 스쳤고, 잠시 빛이 지나갔다. 컴퓨터모니터에 나온 젊은이의 모습은 꽤나 훤칠했다.
잘 나왔네. 몇 장 뽑을텐가? 그렇게 묻고는 마우스로 포토샵 작업을 좀 하려던 찰나, 젊은이가 내게 말했다.
포토샵 해주지 마시구요, 나온 모습 그대로 할게요. 그래, 뭐, 그렇게 해달라는 사람도 몇몇 있으니 나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몇장이냐고 물으려고 했지만, 젊은이의 말이 곧 이어졌다.
여권 사진은 원래 사진을 축소한거죠?
어. 그렇지. 그게 왜?
그럼 방금 찍으신 사진으로 영정사진을 뽑을 수 있을까요?
잠시 벙찐 나는, 이윽고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이 젊은이, 보기와는 다르게 어디가 나사가 풀린건가? 아니면 불치병? 어찌되었든 나는 그에게 말했다.
어이, 젊은 나이에 무슨 사정인진 모르겠다만 그럴듯한 복장을 하고 찍어도 모자랄 생애 마지막 사진을 검은 티셔츠에 청바지로 하겠다고?
그러자 그가 말했다. 앞으로 또 찍으러 올겁니다. 전 예전의 저와는 다르게 매일매일 살이 빠질거에요. 여태껏 살이 좀 있었던 제 모습을 마지막 모습으로 내걸고 싶진 않습니다. 저도 저 나름, 살 빠지면 괜찮은 인상이라 생각하거든요. 기왕 죽을거면, 제일 멋있는 모습으로 남고 싶지 않을까요?
젊은이의 말에 나는 망치로 후려쳐진 듯 잠시 생각에 공백이 생겼다. 공백이 지나가고,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불치병이로구나. 살이 매일 빠진다는 건. 그리고 또 한 가지.
정말 멋진 젊은이로고. 나는 그렇게 말하고 선반 위의 설탕과 프림을 컵에 풀고 커피를 타서 그에게 주었다. 설탕이 들었음에도 그는 사양치 않고 고맙다는 듯 고개를 숙이곤 소파에 앉았다. 설탕을 거부하지 않다니, 많이 심한가보다.
암인가? 몇 번의 홀짝임이 지나고 내가물었다.
네. 뇌종양입니다. 이미 끝자락이죠. 여기 오려고 몰핀을 두 배나 투여받고 왔어요.
어째서 이런 구석진 곳에?
그야, 이런 사연을 얘기하면서 바람잡을 곳은 당연히 낡고 오래된, 나이들고 멋진 백발을 가진 사진사가 있는 사진관 뿐이니 아니겠어요?
나는 간만에 호쾌하게 웃었다.
다음날. 말했던대로 젊은이는 왔다. 어제보다 약간 핼쓱해진 채. 유리문을 여는 것도 힘겨워보일 정도였다.
괜찮나?
네. 그냥 좀 기운이 없을 뿐이에요. 토스트 사왔는데, 드실래요?
고맙네. 커피는 내가 타지.
젊은이나 나나 아직 해결하지 못한 아침식사였던 듯 하다. 끼니를 마치고, 의자에 앉은 젊은이는 이리저리 머리를 만지더니, 활짝 웃었다. 그 웃음이 마음에 들었다. 가장, 최대한 아름다운 자신을 누군가에게 기뻐하며 보여주려는 웃음이었다. 그 웃음이야말로 지상 제일의 웃음이었다. 나는 간만에, 젊은 날 지금은 세상에 없는 벗들과 탑골 공원에서 노인들의 사진을 찍던 나날과 같은 기쁨, 사진사의 보람을 느끼며 셔터를 눌러댔다.
기왕 피할 수 없다면 좀 더 좋은 걸 먹고 다니지 그러나?
사람이 무슨 대소사가 있다고 일상이 바뀌어지진 않더군요. 그녀에게도, 보여지진 않겠지만 제 일상, 저 자신 그대로 살다 가는 걸 보여주고 싶고요.
그녀를 위해 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영정사진을 찍으려는건가, 자네?
그는 잠시, 인형줄이 끊어진 듯, 벽에 고개를 기대어 내 머리 위의 시계를 보다가, 이내 정신이 돌아온 듯 말했다.
네. 그녀에게만큼은 그 누구보다 멋진 삶을 살다 갔음을. 저를 잡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줄 정도로 멋진 저 자신만을 보여줄겁니다. 비록 저는 없겠지만요.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젊은이는 아침 일찍 사진관의 첫 손님이었다. 때로는 첫 손님이자 동시에 마지막 손님이었던 날도 있었다. 젊은이는 날이 갈수록, 초췌해진다기보단 알맞게 야위어가고 있었다. 본래의 그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본질 그 자체인 듯 느껴졌다. 곧 늘그막에 접어들어 가게를 닫을 것이었던 내게 그 젊은이는 마치 예수를 보는 기분을 들게 하였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젊은이는 빛을 잘 느끼지 못했다. 그럼에도 애써 힘겹게 웃었다. 미소지었다. 그녀는 대체 누구일까? 이런 멋진 사내를 힘겹게 하는 그녀는 대체 누구일까? 이런 사내가 자신의 마지막을 병실에서의 초췌함이 아닌 식장에서의 수수한 편린으로 알리고 싶을 정도로 생각을 해주는 여자는 대체 누구일까?
젊은이는 그저 물을 때마다 행복한 꿈을 꾸듯, 죽은 듯이 눈을 감고는 입가에 함박웃음을 짓다 다시 살아날 뿐이었다.
젊은이. 그러고보니 이름을 알지 못했구만. 이름이 무언가?
아저씨. 제게 이름은 중요치 않습니다. 곧 죽을 사람인데, 이름이 뭐 중요하겠습니까? 커피잔을 잡은 그의 손이 흔들렸다.
뭐 그래도, 알고는 떠나보내야지 않겠나?
괜찮습니다. 단지, 제 모습만을 기억해주세요. 저 스스로가 보기에도, 오늘의 저 자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제 모습 같거든요.
젊은이는 하느랗게 미소지었다.
그럼, 뽑아갈게요.
그러게. 당장이라도 더 야위면 슬슬 안쓰러워질 것 같은 느낌이야. 오늘이 딱 적당해.
고마워요.
나는 그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내의 사진을 열 장 뽑아다주었다. 그리고 내가 예상했듯, 당연하게도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 장만을 집었다. 그리고 고맙다고 말했다.
얼마죠?
어이, 젊은이. 나는 자네가 내게 돈을 받아가야한다고 생각허이. 늘그막의, 모든 꿈도 열정도 식은 황혼의 나날에 자네같은 멋진 불나방을 만나 마음에 요기를 했는데, 내가 무슨 낯으로 돈을 받겠나? 그냥 가게.
젊은이는 내가 액자 안에 넣어준 사진을 허리춤에 안고는 유리문을 밀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문 밖에서 안으로 쏟아져오는, 저 멀리 골목 입구에서부터 깔려오는 노을의 빛을 등지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내가 처음 보았던,슬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커피, 맛있었어요.
그리고 그는 문을 닫고, 빛과 함께 사라졌다. 나는 카운터에 서서 양 손바닥을 유리에 짚고는, 멍청히 서서 그가 남겨두고 간 빛의 자락을 천천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이 사라질때까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여느날처럼 셔터를 열고, 잠겨있던 문을 열쇠로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 들어가려는 찰나, 내 발에 뭔가 턱하고 걸리는 소리가 났다. 발밑을 내려다보니, 하얀 편지봉투가 있었다.
나는 편지를 집어들고는 카운터 위에 놓고, 모든 해왔던 점검을 마치고서야 편지를 들고는 뒷문으로 나가 담배에 불을 댔다. 편지는 깔끔하게 봉이 뜯어졌다. 나는 봉투를 조심히 손가락 사이에 끼우곤 안에 든 편지를 읽었다.
자식. 가지도 않을거 알면서 멍청한 짓을.
편지를 접어 주머니에 넣고, 담배를 손에 잡았다. 지붕 틈새로, 처마자락에 열린 고드름 때문에 굴절되지 않은 사이로 자그망 하늘을 보았다. 하늘은 무척이나 맑았다. 매일매일 맑았었다. 누구 말마따나.
세상에서 가장 멋진 젊은이의 사진을 뽑아 금테를 두른 액자에 넣어 사진관 쇼케이스에 비스듬히 세워놓고는, 셔터를 내렸다.
오늘은 평소에 피우지 못한 밀린 담배의 잔량을 해결해야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2013 04 13 토
02 20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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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총을 배달받은 어느 날의 사나이
수업 중이었다. 가늘게 주머니 안에서 울리는 진동에 잠에서 반쯤 깼다. 졸고 있었던 걸까.
주머니 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문자를 봤다.
02-332-2700
고시원입니다. 택배가 왔으니 받아가십시오.
뭐지. 택배? 택배 올 일이 없는데. 그렇게 잠시 갸우뚱하고는 잠시 눈을 비볐다.
아직 꿈에게 머리카락의 끝자락을 잡힌 상태였던 나는 이윽고 그에게 이끌려 그대로 깊은 잠에 들었다.
문득 후려쳐진 의식에 놀라 깨어나보니 아무도 없었다. 강의가 끝나고 십오 분 쯤 흘렀다.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니 휑한 강의실의 광경이 보였다. 맨 뒤에 바퀴 달린 거치대 위에 올려져 있는 갖가지 엔진들이 줄지어 서 기름 냄새를 바람에 흘리고 있었고, 파란 합성섬유를 깐, 유연한 디자인을 한 의자들은 하나같이 개성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정지해있었다. 문고리를 돌렸다 뗀 손에는 살며시 스쳐 지나갔던 스티어링 오일이 묻어 있었다. 기름때에 찌든 작업복을 락커룸에 넣고 밖으로 걸어나갔다. 바로 앞에 있는 우레탄 농구장에서 한 쪽 농구대에서 개인전을 하는 한 무리의 학생이 보였다. 오늘도 여태까지와 같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하늘은 마치 애초부터 난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회색을 띄며, 집중된 시선 속에 찬찬히 빛을 잃어갔다.
눈을 감았다 떼자, 다시금 연회색의 하늘이 보였고, 그와 동시에 나는 오늘 하루를 잃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여태까지와 같이. 여태까지의 몇 년간 들었던 느낌 이었다. 얼마나 많은 나날을 잃어버리고 산걸까, 나는.
밤 여덟 시의 길을 걸었다. 시간과는 맞지 않는, 어둡지 않고 탁해서 평소보다 조금은 밝은 하늘이 어색했다. 잃어버린 시간의 틈새 속에 끼인 듯한 느낌이었다. 길은 굴곡이 있어 살짝 숨이 찼고, 지나가던 예쁜 여자의 향이 스칠 때 숨을 크게 들이쉬는 순간이 되어 살짝 흠칫했다. 오른쪽, 자그만 대학가 상가에 늘어선 삼겹살 집 세 군대에서 여러 부위의 돼짓기름 냄새와 파 냄새가 섞이어 났다. 저 멀리에서부터 일정한 간격을 두고 크락션을 울리던 차의 정체는 사고가 난 SUV를 끌고 가던, 비상등을 킨 푸른 레카차였다. 조금 더 걸으면 오른 쪽에 정문을 오롯이 닫고 있는 초등학교의 바로 옆 문구점에선 주인이 키가 작아 닿지 않는 셔터 끈을 까치발을 하며 간신히 잡아내렸고, 언제나처럼 그 모퉁이에서 언제나 쌓여있는 쓰레기를 먹는, 진한 회색의 비둘기는 인도에서 발 밑, 도로를 쳐다보고는 모둠발로 뛰어내려 총총이며 걸어갔다.
언제나 풍경만을 보고 있다. 그 풍경은 항상 내게 말이나 글로서는 남지 않으며 오직, 그것도 슬프게 오롯이 기억으로만 남는다. 지나온 나날의 비디오 테잎은 서랍장을 채우고도 남아 이제 집 안의 공간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다. 그렇게 난 지쳤다. 테잎을 옮겨 적어야 이루어지는 나의 소망은 이미 저 먼 선 캄브리아기에 멈춰서서 고고히 금이 간 채 하찮은 듯이 나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눈이 내리는 날, 오돌오돌 떨던 몸을 겨우 이끌고 지친 듯 문을 열어 난롯불 앞에 앉았을 때 지나온 눈길의 고난을 잊는 것처럼, 말 그대로 눈 녹듯이 나의 하루하루의 가치와 의미는 사라져갔다. 그저 나는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된 것이다. 하루하루, 찍어서 살며시 잡고는 팔랑팔랑 흔들어 압정에 꽂아 어느 한 구석의 벽에 찔러넣고는, 그 사진만을 보며 매일같이 생각하고 느끼는 나 자신이 보인다. 하얗고 빈 방 안에서, 그 누구도 보러 와주지 않는 나 혼자의 박물관을 지키며…….
골목에서 나와 금요일 밤의 이태원의 거리를 걷는다. 연인. 삐끼. 상인. 외국인. 클럽 매니저. 섹스숍의 전단지. 바닥에 널브러진 뉴 인터페이스 포스터. 어느 바에서 흘러나오는 프랑스 여 가수의 꾸밈없는 목소리와 그 옆의 옛날 클럽 비트인 We are electric의 스쳐가는 한 부분.
위 아 일렉트릭.
아무 의미도 없는 한 구절이 그렇게 내 속을 흐르며 헤멘다. 걷는 거리마다 연인들이 서로의 겨드랑이에 팔을 얽거나 서로의 손바닥에 손바닥을 포개어 놓은 모습이 지나간다. 삐끼는 나를 제외한 앞뒷사람에게만 삐끼질을 했다. 한 외국인 남자가 한국인 여자를 꼬시곤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었다. 해는 저 멀리의 이름 모를 산의 둔덕에 손을 짚고 부드럽게 월담을 하고 있었다. 화려한 거리. 늘어선 프랜차이즈 옷집들과 음식점들. 외국 음식 전문점. 클럽. 지하의 클럽. 상층의 클럽.
IP부티크 호텔. 해밀튼 호텔. 이태원 역. 버스 정류장. 외제차.
그 모든 네온과 LED와 HID와 모닥불과 백열등을 지나서. 온누리에 내린 빛과 영광의 곁길, 가파른 언덕으로 올라가는 포장이 좋지 못한 길 위에 내가 있다. 빛도 영광도 그 모든 것도 닿지 않는 곳에, 관보다는 조금 넓은 방 한 칸에 나는 그렇게 숨죽여 하루하루 찍었던 사진을 꺼내어 늘어놓고는 혼자 소리죽여 울고 웃는다…….
정작 슬픈 일은, 현상액이 없어서, 얼마 전부터 저 먼 날의 잊고 싶지 않은 기억과 마음들이 서서히 우그러들어 먼지가 되어가고 있는 것을…….
다른 공기가 흐르는 보이지 않는 벽의 결계의 손잡이를 돌려 열고는 발을 들여놓았다. 좁디 좁은 통로와, 그 통로에서 한 번 왼쪽으로 돌아 세 걸음을 걸으면, 나의 현상실이 있다. 침대 위에 가방과 겉옷을 벗어 내려놓고 문을 닫았다. 다시 앞으로 다섯 걸음. 왼쪽으로. 앞으로 열네 걸음. 오른쪽에 있는 관리실의 문을 열고 총무에게 택배를 받았다. 책 한 권 크기의 자그마한 택배 상자였다. 작은 것 치곤 무거웠다.
그대로 방금 전 왔던 길을 되돌아가 방문을 열고 침대 위에 택배를 던지곤 의자에 앉아 상반신을 길게 폈다. 책상 아래 냉장고 때문에 다리는 침대에서나 필 수 있다. 컴퓨터를 켰다. 오래 된 컴퓨터라 팬이 잠시 굉음을 내며 웅웅대더니 잠잠해졌다. 그 굉음의 잠깐동안 옆 방에서 벽을 두들겨왔다. 나는 잠자코 있었다…….
잠시 얼마 높지도 않은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보다 높은 천장을 바라본지가 얼마나 됬는지가 기억이 났다. 몇 년 전, 전주의 그리운 집에서였다. 그 때 올려다본 천장은 참 많은 생각을 들게 했었다. 천장과 얘기를 했고, 천장을 보며 살그레 웃었었다. 천장에 나 자신이 비쳐보이는 듯 해서 그 곳에 손가락을 가까이 가져다 대려고 하면 슬퍼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약간 베이지 빛이 도는, 까슬까슬한 벽지가 발라져 있는 채로 정지해있는 천장이 내 모습과 같았다고 생각이 들었었을까.
문득 택배가 생각이 났다. 바로 팔을 뻗어 잡고는 무릎 위로 올려놓고 얼마 전 깎은 손톱으로 힘겹게 테이프를 뜯었다. 골판지가 해체되고 난 자리엔 여태껏 만져본 적 없는, 아주 부드러운 검은 천으로 겹겹이 싸여진 무거운 무엇인가가 있었다. 뭔가 중대한 의미가 있어보이는, 혹은 있어보이도록 생겨먹은 그 검은 천을 천천히 걷어내자, 권총 하나가 보였다.
무슨 권총인지는 모른다. 게임에서 봤던 것 중에서 기억나는 이름은…콤팩트? 무슨 콤팩트인진 모르겠지만 콤팩트와 똑같이 생겼다. 아니, 여튼간에 중요한건 왜 권총이 나한테 왔냐는 거다. 어디의 누가 언제 어디서 보낸 것일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오발송? 아니, 애초에 대한민국에서 권총이라는 흉기를 누군가에게 택배로 보내는게 가능하나? 비록 보낸다 쳐도 그런 물건을 보내는데 실수를 해서 나 같은 사람에게 온다는 것 자체가 또 가능할까?
여러가지 망상과 잡념이 머릿 속을 옭아메어갔다. 나는 기름냄새가 나는, 거의 새것과 같아보이는 권총을 양 손으로 으스러질 것만 같이 세게 쥐고는 한참을 제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한 곳에 생각이 미쳤다.
총알이 장전되어 있을까?
어느 곳을 누르면 탄창이 나오는지 몰라 잠시 헤메다가, 손잡이 근처를 마구잡이로 문대다보니 탈칵 하고 탄창이 열렸다. 조심스래 꺼내자 금속성의 긁히는 소리가 났고, 곧바로 탄창이 빠져나왔다.
안이 비어있었다. 잘 보이지 않아서 형광등 바로 아래 쪽에 빛을 받게 해보자, 딱 한 발이 맨 아래에 간신히 보일 듯 말 듯 장전되어 있었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잠시 가만히 멈춘 채 앉아 있었다. 무엇인가 많은 생각이 들지만 정작 그 생각이 무언지를 보려고 하면 어딘가로 사라져 생각할 수가 없었다. 권총을 잠시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던지곤, 머리를 싸매쥐고는 한번 뒤로 쓸어넘겼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죽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이 났다. 잘 살아오고 있던 어느 나날의 밤에 내게 실수로 배달되어진 권총이 나에게 오만가지 추억과 기억을 끄집어내게 만들고 있었다. 잘 살아오고 있던 어느 나날의 끝자락에 마침맞게 내게 배달되어진 권총이 나에게 두 가지 생각과 그 결과의 파동만을 생각하게 만들고 있었다. 우그러들었던 먼지들조차 다시 모여들어 사진이 되었고, 잃어버렸던 추억과 기억들은 하나하나 세세하게 되살아나 숨쉬었다.
되짚어보자. 권총이란걸 안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생각을 하는진 모르겠지만, 이 것으로 죽음을 맞든, 혹은 그저 갑자기 나에게 삶의 존속여부를 시험에 들게 한 이 불청객을 무시하고 앞으로의 나날을 더 살아가든, 일단, 지나왔던 나의 소중한 것들을 되짚어보기로 결심했다.
언제인진 모르겠지만, 내 인생 최초의 기억 때부터 두 사람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니, 사이가 완전히 틀어져있었다. 같은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같은 차에 타 어딘가에 가고, 같은 집에서 잠을 자도 두 사람은 어딘가가 미묘하게 뒤틀려 있었다. 12mm 볼트에 13mm 복스알을 가져다 댄 듯 어딘가가 헛돌고 맞물리지를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이 지나서, 내가 어느 정도 자랐을 무렵. 고등학교 이 학년 때에 나는 두 사람이 진작에 헤어진 것을 알았다. 아마 그 최초의 기억으로부터 멀지 않은 순간이었던 것으로 안다. 몇 월 몇 일인지까지도 기억하고 있었지만, 밝든 밝지 않든간에 내 자신 그 자체의 것을 잊지 않으려 하는 나 자신조차도 그 사실은 잊고 싶었던지, 내 나이 몇에 일어난 일인지도 모른다.
치졸한 이유로 왕따를 당했다. 초등학교 이 학년 때부터였다. 친구가 열 댓 명은 있었고, 반 애들과도 말은 하고 다녔다. 그저, 몇몇 일진들에게만 당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시간 동안 나를 좀먹고 얽메어오고 내 행동을 강제하여 마침내 지금의 나 자신에게 조건반사 비슷한 것을 일으키게 한 점까지, 그 녀석들은 나라는 존재를 파괴하는데는 실패했지만 방해하는데는 완벽에 가까운 성공을 거두었다. 몇 년에 걸쳐 몇 명인지도 모를 그 녀석들은 지금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복수하고 싶어서라기보다, 그저, 이미 죽어버린 마음을 끌어안고 죽기 전의 감정으로 상처를 보듬어보려 해도 부질없는 짓이기에, 죽은 마음으로 생각한 거다. 참는게 좋은거다. 용서하면 이기는거다.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 집안이 불우하다거나, 어딘가 아픈 과거가 있다거나…….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좀먹어가며 쪼그라드는 반쪼가리 천사, 점점 자라나는 반쪼가리 악마가 되어갔다. 원래의 의지를 꺾어 선함으로 돌려놓으려는, 비록 일이 크게 벌어지는 것이 싫었을 뿐인 그 때의 생각은 점점 그렇게, 앞 면에서는 남을 용서하고 한없이 착한 나 자신을 보여주었고, 뒷 면에서는 한없이 어두운 자신을 끌어안으며 뜯어먹으며 그 피를 마시곤 아파서 울고 있었다. 스스로 너무나 외로워서 스스로를 물어 뜯어 살을 삼켰다. 따뜻한 피를 마셨다. 그렇게 하면 잠시라도 빈 가슴이 채워졌으니까.
가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몇몇 매체에서는 텅 빈 가슴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리고 내가 겪은 바로는 사람이 정말 외로울 때는 가슴이 텅 빈 듯, 공허하게 느껴져서, 갓 탄 커피를 담은 머그컵을 가슴팍에 비비면 그렇게 따뜻하고 채워지는 느낌이 들 수가 없었다. 베개를 끌어안으면 그 안이 스며드는 듯 해서 행복하게 잠을 잘 수가 있었다. 그 때부터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의 정글을 살아가며, 반쪼가리 천사와 악마가 되었고, 그 외로움을 풀어가는 폴라로이드 인생을 시작했었던 건지도 모른다.
온전한 가족이 갖고 싶었다. 가족 구성원이 모두가 서로 정상이라면 그 가족의 일상은 어떤 것일까가 궁금했다. 서로가 웃으며 식탁에 앉은 채 농담을 하고, 생선을 발라서 올려주고, 소파에 앉아 과일을 깎아 나눠 먹으며 같은 프로그램을 보며 웃고, 매일 아침 좋은 아침이라고 말하며 생긋 웃을까?
서로가 무표정으로 식탁에 앉아 누가 먼저 일어나는지 경쟁이라도 하려는 듯 서둘러 먹고는 무미건조한 말 두 세마디면 집에서 벗어나 그제서야 그나마 개운한 마음으로 아침의 시린 공기를 마시면서 그 공기가 가슴팍에 스며들 때 애써 모른 척 하며 가야할 길을 마지못해 가는 것과는 얼마나 다를까?
오히려 나 자신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아니, 개의치 않는 것처럼 살아왔다. 어렸을 적부터 별명이 애어른이었으니까. 애어른처럼. 어른처럼. 모든 고난은 지나가리라. 참고 참으면 행복이 오리라.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백 번 세고 다시 이백 번 세면 끝나있을 것이다. 내가 참으면 나 혼자의 아픔으로 끝나지만 내가 참지 않으면 모두의 아픔으로 끝날 것이라는 생각. 나 자신도 챙기지 못했으면서 남을 챙겼던 나의, 지금도 이유를 알지 못하는 이타주의적 태도가 너무도 좆같았다. 왜 그랬을까?
그리고, 이 수 만 번도 넘게 나 자신에게 물었던 질문의 대답은 항상 정해져 있었었다.
나 자신이 상처를 너무도 많이 입었으니까. 그 상처가 얼마나 아픈지를 아니까. 남들에게 그런 상처를 입히는건 죽어도 싫어서였어.
좆까라, 병신아.
힘내라, 병신아.
아직 수 만 장 중에 한 장 뿐일 사진 하나를 움켜쥐고 나는 끅끅대며 소리를 죽인 울음을 울었다.
따돌림은 중학교 때도 계속되었고, 중학교 이 학년 때 즈음부터 글을 쓰는 것이나 책을 읽는 것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던터라 삼 학년 때는 점심을 굶고 도서관에 있었을 정도였다. 덕분에 오후 수업때는 배에서 자꾸만 소리가 나서 난처했던 적도 많았다. 그리고, 그 삼 학년에, 나는 사랑이란 것에 눈을 떴다. 이런 류였다. 누구 누구가 좋아한대요 라고 몰아세우면 당사자들은 정작 마음도 없어서 불편해하고 싫다고 손사래를 치고 화를 내지만, 그게 오래 되면 어느 한 쪽이나 드문 경우, 양 쪽 다 마음이 생기는 경우였다.
당연하게도 난 그 한 쪽이었다.
빼빼로 데이에 짝꿍이었던 그녀 책상 서랍 안에 몰래 넣었던 서투른 비밀 선물은 바로 들통이 나버려, 그녀가 직접 말하는 것도 아닌 그녀와 친한 여자애가 전해준 싫대. 라는 말과 함께 되돌아왔었다. 그리고 그녀는 많이 불편해하고 있었다. 그렇겠지.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가 자신에게 고백을 했으니 불편할 수 밖에 없다. 내 잘못이다. 그렇게 나는 그녀에게 한없이 미안한 마음을 품고는, 포기했다.
어느 가을 날, 아직 하복을 입을 때. 자고 일어나보니 삼 학년이 점심을 먹는 시간이라 층 전체가 비어있었(을 것이)다. 내 옆자리에는 그녀의 하늘색-파란색의 부드러운 면 체육복이 있었다. 변태적인 생각은 없었다. 다만, 그저, 마지막으로 그녀에 관한 무언가를 기억하고서 그녀를 내 마음 안에서 놓아보내기로 했었다. 그런 생각 비슷했었다. 그녀의 체육복은 마치 군데군데 실이 뭉쳐 보풀어오른 것이 만져져 약간 헤진 느낌이 들었고, 부드러웠다. 살며시 코 앞으로 가져가자 살 냄새가 났다. 창 밖에는 햇빛이 약간 황금빛에 물든 채 비스듬히 내리쬐여 스며들고 있었고, 낙엽은 어딘가에서 흘러들어온 개미마냥 창가에 소리없이 쌓여갔다.
그렇게 나는 그녀를 놓았다. 그녀의 이마고는 그렇지 못했지만.
웃는 여자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직 겪어보지 못해 초짜였던 인터넷 상의 인연에게도 푹 빠졌었고, 시간이 지난 지금 한 여름날의 추억처럼 가끔씩 입에 올리며 그녀와 얘기를 한다. 하지만 곁가지일 뿐이다. 또 한 사람은 우습게도 나와 내 친구, 물론 인터넷 상의 친구가 동시에 고백을 했었다. 그녀와 나는 영혼을 함께 하는 친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정도로 내게 위안과 힘이 되어줬고, 서로에게 서로가 좋아하는 음악을 공유하며 좋은 친구로 지낼 수도 있었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녀가 정말 내 반 쪽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진정한 사랑인 것 같다는 허영감에 부푼 진심에 그 안정감을 깨고 고백을 했지만, 그녀의 이미지는 조각이 나 흩어졌다. 지금도 친하지만, 흩어진 그녀의 모습이 아쉬울 뿐이다.
그렇게 외롭게. 외로운 마음을 채우려고 헤메었다. 설상가상으로 고등학교 일 학년 때에는 무척이나 퇴폐적인 감상주의에 젖어들어 우울증에 시달렸었다. 덕분에 글은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그 푹 젖어 축 늘어진 허탈함과 공허함, 그리고 슬픔과 허무가 내 자신의 대부분이자 내 자신 그 자체여서 이따금 힘이 든다. 하여간에, 그 우울과, 내가 여태까지 안고 있었던, 친한 동생이 말해줬던 것과 같은 걸지도 모르는 '너무 착해서 자기 자신을 악마로 만들고 있잖아' 와 같은 내 자신 안에 내재된 무엇인가가 그동안 쌓여왔던, 죽어버린 내 심장에 한줄기 남아있었던 발화점을 건드려버렸는지, 고등학교 삼 학년에 나는 불량아가 되었다.
결과 130 여 일. 결석 80 여 일. 매일같이, 비오는 아침에도, 눈오는 흐린 날에도, 쨍쨍한 볕 아래서도 PC방에 갔다. 그 많은 돈이 어디서 났는진 기억이 안 나지만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학교 빠진걸 들키고, 나를 그렇게도 사랑하시는 아버지를 실망시켰다는 죄책감과 가면 어떻게 혼날지 걱정되었던 두려움과 불안함이 범벅이 되어 나 자신을 죽였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되살아나 모순을 저지르고, 다시 실망시켰다는 죄책감이 다가와 내 목을 조른다. 더욱 더 커져서 돌아와서는…….
고등학교 일 학년 때부터, 이 학년 때까지 마주칠 수 있었던 그녀 생각에 그렇게 목을 맨 이유인지도 모른다.
그녀도 인터넷 상에서 만났다. SNS에서. 헬리젯이라는 곳에서 만났다. 그녀는 내 우상 그 자체였다. 깨져버린 이미지의 그녀로 나는 예술하는 여자에 대한 이마고를 갖게 되었고, 중학교 시절의 그녀로 웃는 얼굴이 예쁘거나 성격이 밝은 여자에 대한 이마고를 가지게 되었다. 어느 한 여자로 인해 어른스러운, 성숙미를 가진 여자에 대해 이마고를 가졌고, 그 모든 것은 그녀에게 들어맞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것들을 제하고서라도, 내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던 여자였다.
하지만, 관심종자에 조울증 증상이 보였던 나는 SNS에 여러가지 글들을 쓰다가 관심 받고 싶다는 투의 글을 써가면서, 점점 사람들과 멀어졌다. 그럼에도 그녀는 나와 가까이였지만. 그러다 결국 나는 회의감을 느껴 탈퇴를 했고, 잠시 바쁜 공부를 해가면서 몇 개월 쯤 그녀를 잊고 살아갔다. 그 이후, 헬리젯에 다시 가보았지만, 그녀는 이미 없었다. 아니, 헬리젯 자체가 없었다.
네이트온이 유일한 동앗줄이었다.
그리고 그 동앗줄은 별로 믿음직스럽지 못했다. 그녀가 애인이 생겼다는 소식을 헬리젯에서 보았고, 그녀의 기념일 사진을 미니홈피에서 보았다. 그리고 진작에, 헬리젯에서 그 소식을 봤을 때부터 나는 그녀를 포기했다. 헬리젯 안에서 그녀와 함께였던 어느 한 사람의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그녀와 헤어졌음에도 그녀를 소유하고 싶어하는 병신같은 말들 속에서도 반박을 하지 못했던 나 자신이 원망스럽다.
난 그녀가 그렇게도 갖고 싶었고, 그와 반대로 그렇게도 지켜주고 싶었다. 그녀가 행복하다면 나는 아무런 문제 없어. 상관 없어. 그녀가 행복하다는데 내가 괜히 나 자신을 위해서 끼어들어서 무슨 상관인데?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이따금 고개를 치켜드는 내 뒷 면에 의해 파훼당했다.
너 자신도 못 챙기는 주제에 남을 챙겨? 자, 너 스스로를 위해 한번 행동해보라고.
그렇게 나는 그녀에게 몇 달에 한 번 메일을 남겼고, 쪽지를 보냈고, 괜히 나 스스로가 그녀에게 50을 받았음에도 그 50이 나에게는 500이어서 500을 받은 것처럼 그녀에게 행동했다. 그녀는 당연히 부담스러워했(을테)고, 그렇게 서서히 나는 그녀를 나 자신으로부터, 결과적으로는, 떼어놓았다. 은연중에 내가 바란건지도 모른다. 내 앞 면이 이긴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괴로워서 죽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제작년, 내 뒷 면이 저지른 또 하나의 일 때문에 나는 그녀의 전화번호를 얻었다. 카카오톡 친추를 했다. 하지만 소식은 없었다….
권총을 손에 쥐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쳤다. 딱딱하고 묵직한 느낌이 손 안에서 뱅글뱅글 돌았다.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나는 아버지의 장례식장 안에서 불효자식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아버지의 친구분들의 소리없는 질타를 받으며 상을 치렀다. 나 혼자서. 어머니와 누나들은 오지 않았다. 때려 죽이고 싶었다. 슬픔보다 이 세상에게 품은 분노가 너무도 커서, 나는 한 방울도 울지 않고 아버지를 하관하고, 뗏장을 밟고, 약주를 뿌려드렸다. 소나무 가지를 쳐낼 때, 새하얀 하늘 색을 품은 하늘을 어디선가 날아든 학이 날개를 펴고 가로지를 때, 나는 무너졌다…….
어머니와 누나들은 내가 아버지의 장례식 때에 아버지를 비호했던 것과, 아버지의 일생, 당신들을 위해 살아왔던 일생이 어머니로 인해 왜곡되고 와전되어 누나들에게 아버지가 뼈를 가는 증오와 분노를 받았던 것을 이를 갈며 얘기한 뒤로 연락을 끊었다. 반 년째 앓는 폐병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기가 힘들어 근근히 아르바이트로만 생계를 잇고 있다. 등록금은 국가장학금으로 내고 있고.
하루하루가 너무도 살기가 싫다.
권총을 잡은 내가 그렇게 말했다.
하루하루가 그나마 견딜만 했다. 세상은 아직 아름답고, 듣지 못한 음악과 보지 못한 영화와 그림들이 널려있고, 아름다운 풍경들이 너무도, 내 주변에서조차 셀 수 없이 많았다. 무엇보다, 아직 나는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권총을 받기 전의 내가 말했다.
여태까지 내가 왜 참고만 살았는지, 당하고만 살았는지 너무도 울분이 터진다. 내 자신이 왜 참았는지도 나 자신을 찢어죽이고 싶을 정도로 원망스럽고 후회하고 있다. 왜 나는 그렇게 병신같이 당하기만 했지? 어째서? 진작부터 죽어버리고 싶었잖아. 이제 수단이 생겼으니 죽을거야. 반드시.
권총을 잡은 내가 말했다.
나는 남들을 너무도 좋아해. 내 주변 사람들을 좋아해. 그 사람들이 내 죽음으로 인해 받을 고통을 상상해보았어. 그리고 나는 단념했어. 비록 나 자신이 지옥불에 서서히 사그라들지라도 내 주변 사람들이 웃어준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견딜만 했으니까. 나는 애어른이야. 죽고 싶다는 생각따위, 현실로 일으키는 일은 없어. 절대로. 모든 것은 부질없는데 나 자신을 죽이는 것조차 부질없잖아?
운동장에서 다리가 어딘가에 걸려 넘어져 진흙투성이가 된 내가 말했다.
죽어버리자.
언젠가는 죽을 거였잖아.
죽고 싶었잖아.
너무도 외로웠잖아.
단 한 사람만이라도 너를 이해해줬다면 세상을 줬을거라는 너의 바램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먼지가 쌓여 부르터버렸잖아.
그녀를 그렇게도 그리워해서 썼던 글들 조차 이제는 한낱 지난 날의 치기어린 꿈에 불과하잖아.
네가 이 세상에 남긴 것은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까, 죽어도, 네가 맘에 걸려하는 네 주변 사람들의 고통? 그런거 없어.
죽어도 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끼기긱거리는 소리가 우퍼를 통해 들려오는 듯 무지막지했다.
서서히, 당겨져오는 압력이 손가락에 느껴져왔다.
앞으로 조금만 더 당기면,
난……
아직 그녀를 만나지 못했어.
그게 너무도 억울해서 눈물을 쏟아버릴 것만 같았다.
내가 왜 그녀를 만날 수 없으면 안되지? 왜?
내가 그녀를 사랑까진 아니더라도, 그저, 죽기 전에 단 한번이라도 만나봤으면 좋겠어.
아니, 시도라도 해보고 죽었으면 좋겠어.
잠깐만.
나는 권총을 내려놓고는 휴대폰을 손에 쥐고 떨리는 손으로 급하게 그녀에게 카카오톡을 보냈다.
저..내가 뭔가를 잘못한건 알아. 말실수를 한 것도 알고. 잘은 모르겠지만, 알아.
날 차단했는지도 알어. 그냥 네가 잘 되길 바란 마음과 앞으로의 행복과 행운을 빌어주는 마음이었어.
잘 지내고, 건강해.
카톡.
고마워..
그렇게 난 세상을 다 가졌다.
금년 한 해의 엔진 조립 실습이 모두 끝나고, 뒷풀이를 했다. 치킨과 맥주를 먹었고, 강당 안에 울려퍼지는 과가科歌를 마지막으로 모두들 흩어졌다. 언제고 그랬듯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투명한 어둠이 얇게 펼쳐져 있었고, 이따금 별이 빛나는 걸 볼 수 있었다. 신호등이 파란부로 바뀌었고, 그 빛이 사글사글 산란하며 어둠을 비추었다. 횡단보도를 건너, 삼겹살 집을 지나, 저 앞에 아직 문을 닫지 않은 문구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구점에서 뭔가 찾을 게 있었다. 카운터 주변을 잠시 둘러보았고, 이윽고 유희왕 카드를 찾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 육 학년 때, 애들끼리 열었던 교내 대회에서 우승한 다음 날 어머니가 카드를 버렸던 것이 떠올랐다. 별의별 팩이 다 나와있었다. 그 중에서 그나마 제일 오래되보이는 것을 열 뭉태기 골라 값을 치르고, 주인아저씨의 궁금증 어린 시선을 등진 채 입구의 쓰레기통 옆으로 가 하나하나, 설레는 마음으로 뜯었다.
제발, 제발 있어라.
아홉 번째 뜯고서 카드를 넘겨보던 순간,
나는 원하던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죽은자의 소생.
END.
2013 04 06 02 14 土
[N]
네 생각이 났다. 미안하다. 너를 품은 이야기를 담은 글은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기로 했었지만,
너를 완전히 털어버리려면 이 방법이 나은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다.
미안하고, 해서는 안될 말이지만,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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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에 관한 추억
브람스에 관한 추억
브람스. 나에게 브람스는 추억의 한 단편이다. 펼쳐들고 보면 짧디 짧은 단편이지만, 그 단편은 어쩌면 지금까지도 내게 이어져오는 하나의 장편이다. 내 유년시절의 것들은 모두 좋던 싫던 간에 지금의 나에게는 모두 이어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장편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브람스에 관한 추억도 서재에 꽂혀있는 수많은 장편들 중 하나이다.
어렸을 적 내가 살던 3LDK(나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 아파트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는 아이스링크장이 있었다. 가깝고도 가까운 곳이지만, 내가 그 안에 들어가 스케이트를 타본 것은 정작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였다. 백 미터쯤 될까. 난 그 작지도 그렇다고 넓지도 않은, 새하얗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아직 비치지 않고 남아있는, 모든 것을 비출 수 있을 것만 같은 그 빙판을 바라보았다. 아이스링크의 2층에는 레스토랑이 하나 있었다. 난 그 레스토랑에 갈 때마다 창가에 앉아 잘 닦인(혹은 청소차량이 닦고 있는 중의) 은반銀盤을 보곤 했다. 그 레스토랑의 이름은, 브람스였다.
그곳에서 실제로 브람스의 음악을 틀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아니었을 거다. 클래식을 튼 건 기억나지만, 왠지 모르게 브람스는 아닌 것 같다. 브람스의 것을 들어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생각은 어디선가 불어온 확신을 안고서 자신을 고정시켰다. 나는 자주 그곳에 가서, 이탈리안 돈까스를 시켜먹었다. 어쩌다가 궁금해서 햄버그스테이크와 폭찹 스테이크를 시켜본 기억이 난다. 주문을 하고 나면, 시원한 얼음물(혹은 콜라)가 한 잔 나오고, 가벼운 맛이 나는 모닝빵과 진한 스프가 나오는 그런 양돈까스 집이었다. 요즘엔 없는, 그런 레스토랑이었다.
레스토랑의, 앞뒤가 트여있는 의자에 앉아, 더러우니까 만지지 말라는 엄마나 누나의 말을 듣지 않고 통유리 창에 손을 댄 채 입김을 새겨가며 빙판 위를 내려다보았다. 언제나 그랬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까진. 그리고 다 먹고 나서도. 빙판은 한사코 바라보아도 질리지 않았다. 빙판도 나를 거부하지 않았다. 서로 시선만을 주고받을 뿐이었지만, 서로가 서로의 시선에 비치는 그 풍경을 우리는 좋아했던 듯 싶다. 가끔씩 내가 앉은 뒤쪽에 손님들이 앉아있으면 창문과 의자의 틈새로 빼꼼히 바라보기도 했었다. 그런 장난을 치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난 잠시 동안만 하고나서 바로 돌아왔다. 그러곤 다시금 새하얀 빙판을 바라다보곤 했다. 어째서인지 그 빙판의 새하얌은 지금도 선명해서, 냉기가 서린 그 통유리를 사이에 두고 보는 흐릿한 광경. 그 광경 그대로 내 시선과 마음속에 살아있다. 어딘가 뿌옇게 면서도, 친근하도록 선명한 그 풍경 위로는 가끔씩 스케이트 선수로 보이는 여자가 진짜 피겨스케이트복을 입고서 이리저리 다니며 시연을 하기도 했었다. 아마도 레스토랑 주인이 정기적인 이벤트로 준비한 것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어린 시절 자주 다니던 브람스는 초등학교 시절을 거치면서(아마 중반쯤), 아이스링크장과 함께 없어지고 말았다. 아이스링크 안의 은반은 어딘가로 싹 다 녹아내려 흘러가버린 듯 없어졌고, 그와 동시에 벌린 입에서 적당히 먹기 좋게 쫄깃한 치즈를 늘어트리는 바삭한 돈까스와, 따스한 스프의 감촉과, 손바닥을 대고 입김을 후후 불어 그림을 그릴 때마다 정말. 정말로 친숙한 냉기를 가졌던 통유리도……모두 없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한없이 빙판 위를 바라보며 자기 자신을 비추었던 소년의 광경도 없어졌다.
아이스링크장 건물에는 마트가 들어섰고, 그 마트는 지금까지도 영업 중이다. 오백 미터 이내에 초대형 마트 체인이 들어서서인지, 요즘은 영 풀이 죽어있는 눈치다. 일 년 전 쯤 마지막으로 들어가 봤을 때, 입구의 족발집과 종합 화장품 판매 부스와 종업원들과 진열된 상품들 모두 침울해보였다. 마치 회색빛 공기가 감돌 듯 모두들 기운이 없어 보였다. 겉으로는 모두 밝았지만, 속에서 내비쳐보이는 그 무엇인가는 밝지는 않은 것 같았다. 심지어 퉁명스럽게 백 원짜리 동전을 내뱉는 쇼핑카트조차도.
그 무엇도 지난 날에 이 장소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알려주지 못하는 곳에 서서, 나는 지나버린 순간과 장소의 것을 찾고 있었다. 간단하게 장을 보고서, 카트를 집어넣고, 백 원짜리 동전을 주머니에 넣고서 마트를 나왔다. 바깥은 많이 추웠다. 나는 검은 색 트렌치코트의 금빛 단추를 잠갔다. 도로변의 상록수가 머리를 털었다.
후일, 나는 어디선가 1층에 아이스링크가 있고 2층에 레스토랑이 있는 곳을 찾았다. 그리고, 대학교 동기이자 내 애인인 그녀를 데리고 갔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녀를 데리고 간 이유는 아직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와 나는 똑같이 이탈리안 돈까스를 시켰고, 앞서 나오는 스프와 빵을 먹었다. 그리고 유리창에 이마를 데고, 바깥을 잠시 바라보다가, 서로 눈이 마주치자 웃었다. 소파 비슷한 의자며, 자리가 앞뒤로 맞닿아있는 구조며 모든 것이 그때 그 시절의 것과 비슷했다. 심지어 의자의 겉면이 부드러운, 갈붉은색과 검은색이 X자로 체크무늬가 그려져 있는 벨벳이라는 것도.
계산을 마치고 열린 자동문 사이로 걸어나가면서, 나는 지배인이 건네준 성냥갑을 손으로 매만지고 있었다. 종이박스와 같이 살짝 꺼끌꺼끌한 작은 펄프 성냥갑이었다. 그리고 그 위엔 가게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브람스. 라고.
그로부터 정확히 세 달 하고도 열한 시간이 지난 후, 나는 그녀와 이별했다. 담백한 이별이었다. 내 쪽에서도, 그녀 쪽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담백히 보이려고 애쓴 이별이었다. 그 해의 마지막 동아리를 마치고 나서, 동아리방 문을 닫고 나서는 내 손은 성냥갑을 매만지고 있었다. 그때 그 성냥갑을 말이다. 열어보자 그 안에는 여전히 세 달 전의 황 냄새를 풍기는 성냥들이 고스란히 놓여있었다. 그 중에서 하나를 꺼내 이유 없이 그어보았다. 불이 붙었다. 그리고, 꺼졌다.
브람스에 관한 추억은 이게 전부다. 그 이후에 다시는 찾아가지 않은, 그 레스토랑은 소문에 의하면 없어졌다고 한다. 소리도 흔적도 남기지 않고. 어디론가 증발해버렸다. 그리고 내 유년시절의 브람스의 주인이었던 그때 그 지배인도 마찬가지로.
그때와 똑같은 한기를 풍기고 있는 겨울을 걷는다. 아이스링크의 하이얀 은반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지울 수 없는 무게를 가진 한기에 젖은 유리창. 그 유리창으로부터 살며시 침습해오는 한기와 함께 겨울의 레스토랑 특유의 온기가 맞닿아있는 그때 그 공간. 그 장소. 유리창의 한없이 차가운 감촉. 모든게 생각나는, 비슷한 겨울을 걷고 있다.
그때가, 내 어렸을 적이든 몇 달 전이든 간에 그때가 생각날 때는 주머니에서 성냥갑을 꺼내 만진다. 펄프 특유의 촉감은 이미 부드러워져있었다. 성냥갑 안을 비스듬히 민다. 성냥은 여전히 빛바래지 않는 향을 가지고 나열羅列되어있었다.
하나 꺼내어 그셔본다.
바람이 불어 금세 사그라든다. 초침만큼이나 빠르게, 스케이트 날만큼이나 적확的確하게.
20111130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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