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작품/소설에 해당되는 글 24건
- 2014.11.10 매장昧葬의 후일담後日談
- 2014.10.25 유리 구슬과 밤이 흐르는 곳 - 2 1
- 2014.10.21 유리 구슬과 밤이 흐르는 곳 - 1 1
- 2014.10.21 切段
- 2014.10.21 雪遠 - 3
- 2014.10.21 雪遠 - 2
- 2014.10.21 雪遠 - 1
- 2014.01.01 태양이 한 방울의 눈물이 되던 날
- 2013.12.04 겨울冬寒
- 2013.11.23 장葬
글
매장昧葬의 후일담後日談
'작품 >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흰 나비 춤을 추며 上 (0) | 2015.05.14 |
---|---|
그 해 가을 - 上 (0) | 2014.12.18 |
유리 구슬과 밤이 흐르는 곳 - 2 (1) | 2014.10.25 |
유리 구슬과 밤이 흐르는 곳 - 1 (1) | 2014.10.21 |
切段 (0) | 2014.10.21 |
설정
트랙백
댓글
글
유리 구슬과 밤이 흐르는 곳 - 2
'작품 >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해 가을 - 上 (0) | 2014.12.18 |
---|---|
매장昧葬의 후일담後日談 (0) | 2014.11.10 |
유리 구슬과 밤이 흐르는 곳 - 1 (1) | 2014.10.21 |
切段 (0) | 2014.10.21 |
雪遠 - 3 (0) | 2014.10.21 |
설정
트랙백
댓글
글
유리 구슬과 밤이 흐르는 곳 - 1
산맥은 그 둘레를 끊임없이 굽이치고 바람은 언제나처럼 동쪽에서 산맥이 열려 있는 서쪽으로 짙게 불며 흘러가기에 살고 있는 모든 나무와 풀들이 서쪽으로 휘어 곡야曲野라고 이름 지어진 곳이 있었다. 이따금씩 땅 밑에서 전갈이며 곤충들이 올라와 풀을 뜯어 보지만, 이 곡야에서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뭔가를 먹어보려고 하는 생물은 어릴대로 어린 녀석들인 것이다. 목이 마르다고 해서 바닷물을 들이키게 되면 어떻지는 뻔하지 않은가. 왜인지는 모르지만, 대다수의 동물이 살아남지 못하는 곳임에도 식물들만은 잘만 버텨내고 있었다. 개체수의 증가도, 감소도 없이, 그저 모든 것이 옛날과 현재가 같아 기묘한 느낌마저 드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그 연유를 마치 커다랗고 날카로운 석회암 덩어리가 줄이어 서있는 듯, 보는 각도에 따라 하얗기도, 거뭇거뭇하기도, 회색빛이 돌기도 하는 저 산맥을 들어 얘기하곤 했다. 너무나도 드높아서, 구름 조차도 가운데의 몸뚱아리까지만을 삼키고 있는, 끝이 보이지 않는 저 산맥에서 불어오는 거칠고 낮게 깔리는 바람을. 하지만 거기서 바람이 왜요? 라고 물어보아도, 곡야에 사는 모든 어린이들은 그들의 부모에게서 답을 듣지 못했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꺼리는 것처럼 고개를 젓거나, 눈을 감는 부모의 모습을 봤다. 그리고, 그들이 자라나서 그들의 아이들에게 그 이유에 대해 물음을 들어도, 그들 또한 그렇게 답할 수 밖에 없었다. 곡야는 그런 곳이다.
"네? 제 이름이 왜요?" 그는 아주 의아한 건지, 알면서도 숨기는 건지 모르는 듯 반응을 보였다.
'작품 >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장昧葬의 후일담後日談 (0) | 2014.11.10 |
---|---|
유리 구슬과 밤이 흐르는 곳 - 2 (1) | 2014.10.25 |
切段 (0) | 2014.10.21 |
雪遠 - 3 (0) | 2014.10.21 |
雪遠 - 2 (0) | 2014.10.21 |
설정
트랙백
댓글
글
切段
그렇게 해서라도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느 날처럼, 그저 반복되는 무직으로서의 무전취식의 일상의 한복판에서 깨달았다. 얼마 전 그저 문득, 단 하나의 메세지조차 오지 않는 카카오톡 친구들의 틈바구니에서 그녀의 프로필을 눌러보았다. 오랜만에 바뀐 프로필 사진은 그녀가 그녀의 애인과 화목하게 웃는 모습이었다. 몇 달 전만 해도 그녀가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이 충만했는데, 이제는 반 반으로 나뉘어 느껴졌다. 그녀가 행복해보이니 잘된 거야. 라고 위안하는 절반과, 왜 아직도 헤어지지 않은거지. 하는 절반이었다. 나는 후자의 나 자신을 보고서 소스라치게 놀라 그 생각을 접으려고 했다. 접으려고 할 수록 그 동안 억눌러 두었던 그림자 진 마음은 솟아오를 뿐이었고,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고 돌 수록 점점 더 비참해져만 갔다. 이런 내가, 거의 폐인에 가까운 내가 그녀가 내 앞에 나타난다 해도 그녀를 잡을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그녀가 머무를까. 그렇게 점점, 그녀를 생각하던 내 마음은 몇 년에 걸쳐 부수어지고 조각이 나뉘어가며 내 마음을 난자해왔고, 문득 이제 곧 조각조차 남지 않아 가루로서 빻아져 내 마음 안에 그대로 묻어서 알게 모르게 스며가리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 느낄 수 있었다.
당신의 조각조차도 남지 않게 된 내 마음은 도대체 이제 무엇을 부수며 나아갈까. 상실해버린 소중한 것에 대해 생각하며, 내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부수어가며 그나마 근근히 앞으로 나아가던 내 고장난 마음은 이제는 나 자신을 부숴가야만 그것을 연료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 울고 싶었다. 아니, 마음은 울었다. 눈물샘은 말라 비틀어져 이제 모든 것에 대해 무덤덤하게 대응할 뿐이었다. 울고 싶은데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알았다. 동시에 우습다는 것도.
하루에 담배 두 갑을 피워가면서도 글은 진전이 없었고, 잃어버린 음악들과 예술들의 방대한 바구니의 틈바구니에서 그 것들을 다시 그러모으려던 시도는 번번히 중단되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오늘에서야 겨우 내 잃어버린 소중한 방 하나를 되찾았다. Moby의 음악이었다. 떨어진 담배를 사러 가기 위해, 담뱃재와 밤샘으로 인해 약해진 몸과 마음이 만들어내는 온갖 두려움을 헤치고 새벽의 편의점을 갔다 왔다. 그 왕래의 순간에조차 나는 끝까지 이어폰을 빼먹지 않았다. 학창 시절, 열정과 의지로 꿋꿋히 글을 써가던 나 자신이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항상 미니스톱이 박힌 비닐 봉투를 든 채 집에 들어올 뿐이었다.
그렇게, 이 의자에 앉았다. 담배를 하나 꺼내물고 불을 붙이고, 잃어버렸던, 유실流失되었던 내 마음의 조각들 중 하나를 꺼내어 먼지를 털고 오랜만이야. 라고 속삭인 다음 재생 버튼을 눌렀다. 이 음악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를 만났던 때의 그 폐부에 차갑게 스며들면서도 깔끔하게 내쉬어지는 얕고도 무거운 공기. 갈대는 마치 훨훨 부는 바람에 머리를 말리듯 이리 저리 너울대었고, 나는 그 갈대숲을 사이에 두고 천변을 걸으며 찬란하게 별이 빛나던 밤 하늘을 보며 이런 저런 생각들을 했었다. 지금은 별조차도 내 눈에 띄지 않는다. 작은 알갱이 하나 하나가 크게 이루어진 청사진이며 온갖 문양들을 이루던 그 밤하늘조차 그저 새카맣게 드리워져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조각 조각을 이어 붙여보니 어느새 그 때의 나 자신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왜 애써 외면하고 있었을까. 왜 애써 보지 않으려 했었을까. 나 자신은 항상 산산히 부숴져 흩어지지만 그 모든 나 자신들을 모아줄 구심점이 하나씩은 있었는데, 왜 그것들을 돌아보지 않고 애써 일상을 보내고 있을까.
항상 이렇게 깨닫지만서도, 벌써 나이는 첫 번째 파산波散 이후 두 해가 지나 스물 하나에 다다르고 있었다. 이룬 건 아무것도 없고, 한 줄로 요약하자면 그저 한 여자만을 생각하다 아무 일도 못하게 된 병신으로밖에 쓸 수가 없었다. 모든 일은 내 스스로 걷어차 부수어트렸고, 신뢰하던 사람들은 항상 내가 그들을 저버렸으며, 나 자신마저도 항상 극한으로 몰아넣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얻는 건,
뭘 해도 나는 이렇게 살 놈이였어. 라는 쓰디 쓰면서도 나 자신에게 왠지 모르게 냉소를 짓게 만드는 도돌이표였다.
이 곡을 들으면서 나는 한 남자에게 저버려진 어떤 여자의 사막에서의 방황과 눈물로 점철된 만족스러운 점멸漸滅을 썼고, 이 곡을 들으면서는 어떤 그림을 그리는 여자의 깔끔하면서도 한 남자에게는 그녀를 찾아 나서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도록 만들 만큼 지저분하게 추억을 점철한 실종을 썼고, 이 곡을 들으면서는…….
나는 잠시 음악을 멈추고,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는 웅크려 울었다. 그와 동시에, 내가 썼던 모든 글들이 어디에 남아 있는지를 궁금해했다. 모두, 타의에 의해 실종된…….
그녀에 대한 생각을 했다. 하지 않으려 했다. 하고 싶지도 않았고 하면 할 수록 비참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어쩌랴. 하게 되는 것을. 그녀의 가녀리면서도 확실한 손놀림으로 인해 완성되어가는 캔버스가 보였다. 그녀의 아름답고도 수려한 머리카락이 보였다. 그녀의 둥글둥글하면서도 나름 매서운 곳이 있는, 그로 인해 자신이 맡은 바에 대해선 똑부러지는 성격이 보였다. 그녀의……그녀의……그녀의……그녀의…….
그녀가 나를 보며 왜 이러고 있어? 일어나. 예전처럼 나하고 같이 놀자. 라고 말하며 손을 내밀어주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가 나를 보며 왜 이러고 있어? 예전의 네가 아니야. 아이덴티티를 잃어버리고 그저 유실자 n번째로 남으려는거야? 실망이야. 라며 나를 등지고 돌아서서 저 멀리로 걸어가버리는 모습이 보였다.
돌고 돈다.
이 세상에 내 존재를 그녀에게 알리기 위해 글을 쓰자고 하던 학창 시절의 내가 보였다.
이 세상에 내 존재를 그녀에게 글로나마 알리기 위해 글을 쓰던 스무 살의 내가 보였다.
이 세상에 보잘 것 없는 내 존재를 그녀에게 단 한 조각이나마 알리기 위해 글을 쓰던 내가 보였다.
그렇게, ( )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nd.
Novelistar / [N]
이제는 네 이름을 쓰기조차 미안해져, E.
20140827
0412
[N]
title P.S : 切斷의 오타가 아닙니다.
'작품 >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리 구슬과 밤이 흐르는 곳 - 2 (1) | 2014.10.25 |
---|---|
유리 구슬과 밤이 흐르는 곳 - 1 (1) | 2014.10.21 |
雪遠 - 3 (0) | 2014.10.21 |
雪遠 - 2 (0) | 2014.10.21 |
雪遠 - 1 (0) | 2014.10.21 |
설정
트랙백
댓글
글
雪遠 - 3
'내 어린 시절은 참으로, 뭐라고 해야 하나. 그랬었지.'
영상 퍼가기도 안 되다니.
'작품 >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리 구슬과 밤이 흐르는 곳 - 1 (1) | 2014.10.21 |
---|---|
切段 (0) | 2014.10.21 |
雪遠 - 2 (0) | 2014.10.21 |
雪遠 - 1 (0) | 2014.10.21 |
태양이 한 방울의 눈물이 되던 날 (0) | 2014.01.01 |
설정
트랙백
댓글
글
雪遠 - 2
벽난로에서 타들어가는 장작 덕분에 집안에 조금씩 온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그녀는 여전히, 내가 앉아 있는 긴 쇼파 오른쪽의 페어인 작은 쇼파에 앉아 무릎담요를 덮은 채 몸을 앞으로 구부려 양손으로 찻잔을 잡고 멍하니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저 조용히, 맞은 편 텔레비전 위에 걸려 있는, 선생이 직접 친 사군자와 서체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感監無疎識. 선생님은 참 한자를 특이하게 쓰셨다. 그녀는 아직도 찻잔에서 조용히 피어오르는 김의 질감과 흐트러짐을 보고 있는 듯 조용했다. 내가 글을 쓰다 문득 천장을 향해 피어오르는 연기의 물줄기를 보며 생각에 잠기는 것처럼.
설정
트랙백
댓글
글
雪遠 - 1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슈?"
설정
트랙백
댓글
글
태양이 한 방울의 눈물이 되던 날
언젠가 세상에 이런 말이 던져진 적이 있다. 아주 먼, 머나먼 미래지만, 태양계의 주축이자 수많은 생명을 지구에 잉태시킨 태양이 활동을 멈춘다고. 하지만 너무나도 먼, 종잡을 수 없는 시간의 거리 너머에 놓인 미래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이 역사적인 날. 태양이 서서히 쪼그라들다 한 방울의 눈물로서 화하는 어찌 표현 해야할지 모를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이 날 이 풍경을 바라볼 이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 슬플 뿐이다.
태양은 서서히 늙어가고 있었다. 여태까지 늙어왔듯이 일정한 속도로, 시간을 거스르지 않고 죽어가고 있었다. 마치 경험 많은 마라토너처럼 꾸준하게, 천천히 페이스를 유지하며 그 순간, 그 지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지구 위에는 그 전에 있었던 문명들의 잿더미가 아직까지도 마저 다 깎여나가지 않아 수북이 쌓여 있다. 산과 들과 바다의 굴곡을 이루며 잠시나마 온전한 대자연 그 자체로 보일 정도로 너무나도 오랫동안 녹아들어 자연스러웠다.
햇빛은 해가 뜨건 지건 항상 노을빛이었고, 주홍빛으로 물든 산의 능선과, 저 너머 지평선에는 그렇게까지 찬란하게 빛나지 못하는 태양의 빛을 부드럽게 흩뿌려주는 여러 금속들이 쌓여 우그러들고 있다. 서서히 해가 뜨고, 해가 지고. 크기가 예전만치 못한 그 작은 태양은 마치 가을 날씨 마냥의 온도를 지구에 흩뿌리고 있었다. 나무들은 이미 몇몇 고목을 제하곤 절멸했고, 그 때문에 몇몇 텅 빈 황야와 사막에 덩그러니 서있는, 외로운 모냥으로 뻗어나가고 우그러든 고목들의 위로 그 오렌지 비취빛 노을이 비칠 때.
셀 수 없는 떠오름과 짐이 반복되었고, 서서히 그 약속의 날은 다가오고 있었다. 일부, 감성이 풍부하였던 이들의 준비물. 단 한번의 리허설도 있을 수 없는, 여타 피날레와는 달리 아주 방대하고 손아귀로 움켜쥘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사건. 어머니를 위한 피날레가 다가오고 있었다. 태양은 서서히 희옇게 변해갔다. 부플어오르는 정도는 서서히 커져갔고 시간도 빨리 흘러갔다. 호스티스 병상에 누워 창가의 햇빛을 바라보며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는 말기 환자처럼.
하염없이 스쳐 지나가는 광경이 생경하여 다시금 알아차리고 난 뒤에 생각해보았다. 그 순간은 바로 내일로 다가와있었다. 수많은 카세트 테이프가 기관총의 총알처럼 끼워진 채 늘어져 있는 구형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무사히 그 높은 쓰레기의 산에서 넘어지지 않고 온전하게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히도. 쓰레기가 우그러들며 무너지며 감춰져 있던 몇몇이 드러났고, 애초부터 정상에 서서 태양을 바라보고 있던 고참들은 말 없이 신참들을 환영하며 그 날의 다가옴을 알렸다. 수많은 명화들과, 쓰리디 입체 이미지 상영기와, 수많은 책들의 산도 드러났다.
어찌보면, 그렇게까지 사람들이 어머니 태양의 임종을 잊어버리진 않았나보다.
문득, 너무나도 슬픈 햇빛이 살며시 일어나기에 바라보았다.
빛은 엄청나게 진한 오후의 것과 다름 없었고, 태양은 서서히, 마지막 등산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태양은 너무나도 거대하였지만 빛은 그렇지 아니했고, 그렇기에 마치 지구에 마지막 포옹을 하려는 것처럼 태양은 바로 앞까지 다가온 듯 보였다. 빛이 서서히 지평선으로부터 올라왔고, 그 순간, 모든 라디오가. 덕지덕지 먼지가 쌓여있는 책들과 명화들과 상영기의 산 위에서 노래하기 시작했다. 서로가 서로의 범위 안에서, 마지막 어머니의 일주를 응원하고 있다.
임종 직전 녹음하여 중간중간 거센 기침이 콜록이는 배철수의 DJ 멘트와 그를 제일 먼저 떠올리게 하는 롤링 스톤스의 Satisfaction이 살며시 지지직거리며 나오고 있었고, 수많은 상처입고 찌그러지고 군데군데 낡은 옛 백색 가로등들이 점멸하여 책들과 명화들을 비춰주고 있었다. 영사기에서는 인류가 이룩한 모든 영상매체들이 서서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2001 :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나올 즈음에는 태양이 정오까지의 등정을 절반쯤 마친 상태였다.
수많은 에술인들의 한마디씩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태양의 임종 날짜를 알지 못해 준비하지 못한 이들도 문명의 도움으로 참가할 수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과 스케치는 살며시 불어오는 바람에 펄럭이며 밑자락을 찰랑였고, 베토벤과 모짜르트 등의 교향곡은 위에만 먼지가 쌓인 레코드 플레이어로 전 지구에서 동시에 웅장하고 아름답게 울려나오고 있다. 어머니에게 들릴까 싶은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알프레드 히치콕은 언제나 그랬듯 천연덕스럽게 웃고 있었으며, 헤밍웨이와 도데와 포와 그 외 수많은 책 속의 작가들은 그들의 책 페이지로나마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봄에 감사하듯 미풍에 천천히 펄럭이며 한 장 한 장 넘어가고 있다. 희미하게 설국이라 보이는 책의 주변엔 바람에 날리는 먼지가 마치 눈보라처럼 책을 에두르고 있었고, 오웰은 왠지 모르게 슬퍼하는 듯 이따금 페이지를 멈춘다. 수많은 춤과 희극과 오페라들이 영사기를 통해 지나갔다. 피에타는 지는 태양을 향해 세워져 있었다. 어머니의 마지막 햇빛을 받는 예수의 얼굴에는 그늘이 지지 않았다. 피에타에만은 가로등이 켜있지 않았다. 마리아는 그런 예수를, 혹은 태양을 안고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어머니의 머릿자락만이 지평선 너머로 보일 때. 마침맞게 지구와 머나먼 태양의 크기가 겹쳐졌고, 그렇게 모든 라디오가 서서히 지지직거리며 멈추었다. 어머니는, 기침을 한 번 크게 하시더니 적막함 속에 크게 팽창했다 그 반동으로 한없이 우그러드셨다. 그렇게, 어머니는 한 방울의 눈물이 되셨고, 칠흑같은 암흑 사이로 달과 별의 빛이 비치는 라디오에서는 그저 주인 모를 안녕 인사만이 나오고 있었다.
산 그 자체이거나 위에 놓여있던 인간의, 지구의 모든 것들은 거의 영원에 가까웠던 기다림을 끝내고 피날레에 만족한 듯 서서히 무너졌다. 비록 그 누구도 기억하거나 보지 못했을지라도.
Fin
The Day Sun becomes like a single drop of tear
2014 01 01
05 33 [N]
설정
트랙백
댓글
글
겨울冬寒
찬 바람이 분다. 어느새 허여렇게 폐부에 스민 찬 바람은 어느 덧 젖어들어 따스한 몸을 부르르 떤다. 한사코 말려도 갈 것이고 오라고 재촉하여도 오지 않을 그런 것. 계절이 바뀌었다. 어느새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바깥바람은 쌀쌀하기 그지 없었다. 창문을 열고 집 안에 들어가 이불을 덮어 쓰며 리모컨을 이리저리 꾹꾹 눌러대며 채널을 돌렸다. 오늘도 어김없이 뉴스는 난장판이었고, 사놓은 귤은 거의 다 먹어서 심심할 때 요깃거리도 없었다. 계속 리모컨을 꾹꾹대다가 그만두고, 베란다로 나갔다.
바깥은 그저 새하얀 커버를 둘러쓴 듯 아무 것도 비치지 않았고 아무 것도 비쳐오지 않았다. 그저 하이얀 싸늘함 그대로였다. 아무런 생각 없이 지구본이 놓인 책상 앞에 앉아 계속 그것을 돌리고 있는 마냥, 바깥을 바라보았다. 눈이 오려는지 바람은 아무런 찰기 없이 싸늘했고, 오지 않으려는지 햇빛은 쨍쨍했다. 눈이 녹는지 그대로 굳어있을른지 알지 못했다. 숨을 쉴 때마다 하이얗게 새어나가는 입김의 살결을 헤아려보려는 듯 시선은 멀었고, 마음은 그저 비어 무엇을 생각하는지는 나도 몰랐다. 그저 저기 어딘가에, 헤아림의 바깥, 어딘가에 두고 온 것만 같은 머나먼 것이 생각났고, 기억났고, 그리워졌다. 아무런 연고가 닿지 않을지라도 왠지 모르게 그러했다.
문명 사회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고립된 무인도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 머나먼 것에 있는 것에 손을 뻗을진데 나는 그에 발끝만치도 닿지 못했다. 멀었다. 허공으로 사라져가는 내 숨결의 살결을 좇으려는 것 만큼이나 멀었고, 가느다랗고, 희였다. 지구본을 한없이 돌리다보면 멈춘 그 지점, 대서양이든 태평양이든 그 한 가운데에 마치 뭔가 지표라도 솟아나올 것처럼 그렇게 계속 이어나갔다. 돌리고 또 돌렸다. 돌리는 손짓과 돌아가는 그 지구본이 따로가 아닌 하나라도 되는 것처럼, 계속해서 돌렸다. 스쳐가는 선과 점과 대륙이 검은 곡선과 색깔들로 보일 때까지.
멀다. 너무나도 멀다. 어딘가로 가야만 어디로든지 가까워질 것이 분명한데, 그렇지조차 않다. 나는 여기에 있고, 그건 저 곳에 있다. 서로 멈춰선 채 마치 팽팽한 전화선이 연결된 양끝자락처럼 미동조차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가가고 싶지만, 다가가선 안된다고 말하는 듯 하다. 양립한다. 가야한다는 마음과, 왠지 모를 주저와 불안과 안주와 체념이. 어쩌면 서로의 거리는 거기까지가 최근인지도 모른다…….
어디까지일까. 언제까지일까. 내 손등으로부터 팔, 팔꿈치를 지나 어깨, 목을 타고 올라가 머리. 거기까지의 살결을 헤아려본다. 무궁하고 무진하다. 그것들을 모두 하나하나 핀셋으로 집어 헤아려놓고 자, 여기 있습니다. 할 때까지일까? 별들이 다 떨어져 땅에 박히고 그 별들의 조각 하나씩을 모아 목걸이를 만들어 저 높은 달에 내걸어놓고 깊은 잠에 빠져들 때까지일까? 영원히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위를 헤엄치다 지쳐 빠져 죽기 직전에 저 멀리 하느다랗게 보이는 육지의 끝자락을 눈물지으며 닿고자 할 때까지일까?
언제까지고 어디까지고 항상 해온 말이지만, 마치 겨울에 눈이 내리듯. 가을에 마치 살갗에 닿는 바람이 아닌 내 마음에 부는 바람이 스쳐 지나가듯. 봄에 항상 꽃들이 살갑게 피워오르듯. 그렇게, 언제까지고, 헤아릴 수 없는 시간 동안일까.
족쇄채워진 겨울맡의 지나온 발자국을 뒤돌아본다. 항상 그렇게, 눈은 언제고 내가 걸어온 발자국을 지워 흐릿하게 했고, 나는 항상 내가 제자리임을 느끼고 뼈저리게 울었다. 겨울눈이 내리고, 봄눈이 녹을 때까지.
끌어안을 것도 없이 나 스스로의 양어깨를 끌어안고 움츠러든 채 등줄기에 내리는 싸락눈을 쉴 새 없이 맞는 것은 크나큰 고역이었다.
2013 12 04
04 34
설정
트랙백
댓글
글
장葬
어느 날이었다. 펜을 받치는 오른 손 중지 언저리에 물집이 잡혀 펜을 잡을 때마다 찌릿거려 거슬리던 터였다. 항상 내게는 그랬듯, 사소한데서부터 평상시 밀려있던 안좋은 일들이 몰려오려는 듯 싶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펜을 멈추고 손을 내밀어 수화기를 들었다. 혹시나였고, 역시나였다. 닿지도 않았는데도 중지 아래 물집이 짓눌린 듯 아렸다.
오랜만에 본 녀석은 옛날과 변한 게 없었다. 이상했다. 응당 변했어야 마땅할 시간을 사이에 두고 만난 것일 진데 그렇지가 않았다. 문득 콧구멍으로 냄새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육개장의 고춧기름 냄새. 온갖 떡의 고물이 너풀거리는 마냥 살며시 흩어져 섞인, 편육의 기름내와 새우젓의 비릿한 냄새.
나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신발을 벗은 내 두 발이 딛고 서있는 자리를 내려다봤다. 공산품이었지만, 지푸라기로 엮인 자리였다. 마지막으로, 저 멀리 처져 숨을 헐떡이는 후발주자가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향내가 목마른 칼칼함을 치겨들고 콧속부터 내게 스미어왔다.
이미 염을 했었다고 한다. 나는 문득 그렇지 않음을 알지만, 경황이 없어 인편이 늦었음을 알지만 내 스스로에게 그렇게 물었다. 너는 이 녀석이 염되고 나서 불릴 정도로 먼 사람이었는가?
이상하게도, 딱 떨어지는 부정이 뒤이어지진 않았다.
자리에 앉아 잠시 단을 바라봤다. 식장에 와서 몇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 녀석에게 향을 지피지 않았다. 그저 서 있다가, 부조금을 넣은 봉투를 건네고, 짧은 말로 이름과 연락처를 말하고, 그제서야 아무 자리에나 앉아 옆에 있는 주방 쪽을 쳐다볼 뿐이었다. 다들 바쁜 모양이지만, 기분 묘하게도 그 누구도, 어떤 아줌마도 내 앞에 편육 한 접시 놓고 가질 않았다.
문상객이 그리 많진 않았다. 반의반쯤 차있었다. 오후 여섯시 반.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도 드러내어 슬퍼하는 사람도 없는, 중간경계의 시간이었다.
나는 어째서인지 미소 지었다. 어째서인지 무르팍을 움켜잡은 손을 힘주었는지 모른다. 그제서야 한 상 차려져 왔고, 나는 묵묵히 내 앞에 덩그러니 놓여져 있는 접시의 랩을 뜯고 소주를 까 잔에 따랐다. 그리곤 마음속으로 말했다. 잔을 치켜들고서, 그 녀석을 향하고는.
건배. 네 안타까운 죽음에. 네가 뺏어간 그녀의 숨결에 애도의. 지금에 와서야 아무런 감정으로도 정리되지 않은 너의 면상을 목도하게 된 가련한 나에게. 그리고, 내가 네게 주먹을 휘둘러도 닿을 수 없음에 너의 행운에. 건배.
으레 그렇듯 피부 바깥이 쓸수록 넘어가는 술은 달았다. 미쳐버릴 것 같이 달았다.
탁.
편육 위에 새우젓과 김치 쪼가리를 올려 집으려던 찰나, 내 앞에 소줏잔이 상에 부딪는 소리가 났다. 검게 물들이인, 소매가 넓은 상복을 입은 한 여자였다.
저도 한 잔 주세요.
목소리는 깊은 목마름으로 말라붙어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잘 여며졌던 듯, 살짝 느슨해진 매듭이 눈길을 끌었다. 거칠은, 옛것의 상복이 아니었다. 그녀는 머리핀을 꽂아 드러난 왼쪽 귀맡을 대충 쓸어 넘기곤 오른손에 잡고 있던 잔을 내밀었다. 나는 대충 두 손으로 따랐고, 그녀는 잔이 반 쯤 차오를 때까지 어디론가 보내놓은 넋을 부르지 않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넋이 돌아온 듯 상 아래에 내렸던 팔을 들어 두 손으로 받고는 내 눈치를 살짝 보았다. 나는 아무래도 좋았다.
아줌마를 불러 육개장과 밥을 달라 했다. 그녀는, 괜찮다는 것인지 자기가 움직이겠다는 것인지 모를 손사래를 치다 단념했다. 김이 피어오르는 국물이 놓였고, 그녀는 잠시 속으로 숨을 삼킨 듯 멈칫하곤 잔을 들어 내게 살짝 내밀더니 그대로 들이키곤 국그릇을 들어 마셨다. 나는 재빨리 잔을 들어 맞배하곤 그녀를 바라보며 잔을 비웠다. 목구멍에 국물 넘어가는 소리가 예까지 들리는 듯 했다.
쓰네요. 다른 의미라곤 없는, 적확한 말이었다. 그녀는 내 있지도 않은 시선이라곤 개의치 않고 밥을 퍼 국에 말곤 먹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자작하다가, 그녀 앞의 김치 그릇에 기름이 적은 수육 한 조각을 집어놓았다. 그녀는 숟가락에 밥을 뜬 채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숟가락을 내려놓곤 잔을 내밀었다. 나는 밑바닥까지 따라 간신히 찰랑였고, 그녀는 그 수육으로 그 잔을 비웠다. 퇴근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한산했다.
친구인가요?
네. 그쪽은, 들었던 적이 있는데. 여동생 분이신지.
그녀는 귀맡을 쓸어 넘기곤 잠시 앞머리를 흐트러트렸다 옆으로 쓸었다. 꽤나 예쁜 이마를 갖고 있었다.
네. 뭐, 오빠가 제 얘기를 다 하다니 뜻밖인걸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상 배다른 여동생이나 다름없다고 알고 있었기에 나도 그 녀석이 왜 그랬는지는 이해가 가질 않아서였다. 자기가 받은 핏줄인 아버지조차 얘기를 꺼리는 놈이었으니.
여튼, 와주셔서 감사해요. 아시잖아요? 저희 오빠란 사람은 뭐든지. 적지도 많지도 않은걸.
문상객조차도요. 라고 덧붙이진 않았다. 뭐, 그런 인간이었던 것이다. 가족인 여동생의 입에서, 그것도 상중에 나올 정도로 딱히 켕기는 점 없이 완벽하게도. 나는 그저 소주를 한 병 더 비틀어 열었다. 넌지시 눈빛으로 물어봤고, 그녀는 고개를 젓고는 손을 어깨 맡으로 올려 엄지로 등 뒤의 단을 가리켰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자작했다.
아, 그리고 내일부턴 낮춰서 줘요. 두 손으로 받는 게 귀찮기도 하고.
내일? 나는 씹고 있던 인절미를 마저 씹어 삼키곤 물었다.
내일도 굳이 와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
싫음 말고요. 오지 않을 이유도 있진 않잖아요?
잠시 머릿속으로 스케쥴을 떠올렸다. 그녀 말 대로였다. 하지만, 오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는 건 아니었다.
영정 사진을 볼 때마다, 그녀의 카톡 프로필 사진이 어른거렸다. 둘이서 카메라에 꽤나 가깝게 찍힌 스티커 사진. 아무런 감흥 없이, 오랫동안 메말라 사이사이에 나락을 품은 듯 갈라진 논밭을 보는 기분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슬픔도, 분노도, 허망함도 아니었다. 구역질이 났다. 밖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역겨워 토기가 치밀어 올랐다.
숨이 붙어있을 때에 절대 보지도 만나지도 않겠다는 그 씹어뱉었던 다짐을 기한연장하고 싶어졌다. 그녀는 잠시 나와 내 시선의 끝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팔을 올려 턱을 괴곤 창밖을 내다보았다.
비라도 우광쾅 내려줬으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 속을 폭풍우가 몰아치며 온갖 것을 휘젓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도 해당될지 몰랐다. 비록 그다지 슬프지 않은 혈육의 죽음일 것 같지만.
담배좀 피고 오겠다 하곤 구두를 신었다. 한쪽만 열린 창가엔 물에 꽁초가 담긴 종이컵이 놓여있었다. 그 앞에 서서 우중충하게 물들어 곧 뉘울, 햇빛인지 달빛인지 모를 빛을 받으며 불을 붙였다. 스몄다. 비웠다. 채웠다.
털었다…….
한 번, 깊게 타들었다. 그녀는 그 녀석과 삼 년을 사귀었다. 그녀는 스물넷이었고, 그는 다섯이었다. 한 살 차이는 곧 동갑이었다. 사귀기 한 달 전, 그녀가 갓 입학했을 때, 나와 그녀를 아는 사람은 우리가 진작부터 사귀는 줄 알았었고, 나는 그 추측을 진짜로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사정이 있어 가지 못한 MT 첫날, 밤 열두시에 걸려온 전화에서 그녀의 술 취한 목소리와 마지막, 그 녀석의 걱정마라는 말을 듣고 전화기를 벽에 던지지도 않고, 그저 무릎이 으스러지라고 꽉 쥐었을 뿐임에 화가 났다. 아마도, 아니, 확실히. 그녀의 처녀막은 그 새끼에게 찢겼다. 그리고서부터 나는 그 녀석을 멀리했다. 단 두 가지 생각에서부터였다. 반절이 탔다. 컵에 버리곤 하나 꺼냈다. 그 녀석의 면상을 보고 있자면 그 날, 취해있었을 그녀의 이빨 사이로 수작을 부렸을 그 새끼의 모습이 떠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째서, 그녀는 그 새끼와 사귀게 된 건지, 어떻게 그 자식을 좋아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머리가 아팠다. 내가 그를 멀리하려했음에도 그는 내가 그녀의 둘도 없는 친구여서인지 자꾸만 가까워지려 했다. 깊게 한 숨 빨았다. 찬 것 같지도 않았다. 밤은 점점 선명해져가 파고들었다.
……이윽고 나는 바깥에서마냥 불을 밟아 껐다. 보는 사람은 없었다. 대소에 관계없이, 무엇인가의 조재를 부수지 않고선 생각이 멈출 것 같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그 존재는 참으로 소박하게도, 관짝 안에 누워있는, 배때지가 휑댕그레 비어있는 녀석의 골통이나 다른 것이 아닌. 피다 만 담배꽁초 하나였다…….
사실 그렇게 화가 나지도 않았다. 당연히 자기 것일 줄 알았던 것을 뺏긴 아이는 처음엔 울다가, 지쳐 잠들고, 이윽고 그 당연함이 새 주인에게 옮겨갔겠거니 하곤 수긍한다. 하려 한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면, 수긍하게 된 자신을 보게 된다. 구두를 벗었다. 그녀는 안즉 앉아있었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뒷모습이었다.
그녀 앞에 가 앉았다. 그녀는 턱을 괸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기분 좋게 알딸딸한 마냥 몸이 앞뒤로 일렁이고 있었다. 졸고 있는 성 싶었다. 나는 조용히 그녀를 깨워 들어가 자게 할지, 아니면 깨지 않도록 일어나 내일 다시 올지를 고민했다. 잠시뿐이었고, 나는 그녀의 빈 잔에 마지막 한 방울까지 따라낸 다음 일어났다. 신발장으로 가면서, 단을 힐끗 바라보았다. 영정 사진은 무덤덤했다. 나는 장례식의 최후의 최후까지 향을 올리지 않을 것이었다.
그 날 집에 가서 했던 일 중에 기억나는 것이라곤 반 쯤 마시다 변기에 부어버린 맥주와, 뉴스 기사의 토막난 부분부분과, 시리도록 멀리 느껴진 천장 뿐이었다.
다음 날, 느지막히 점심을 먹고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끌며 갔다. 끊임없이 되물었다. 왜 다시 가고 있는 거지? 어떤 이유에서? 그리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내려오고 있는 그것을 기다릴 때, 이유를 찾았다. 그녀의 말마따나 아무 이유 없는 게 이유였다. 나는 씁쓸함을 다시며 3층을 눌렀다. 문이 닫혔다. 거울은 무한히 연속해있었다. 그 끝은 물론이거니와 그 사이에도 무엇이 있을런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녀를 부르지도 않았다. 그저 상 앞에 앉아 작은 조각으로 잘리어 나온 오렌지를 한 손으로 집어 입에 넣으며 발라먹고 있었다. 단 왼쪽, 문이 열리며 약간 붕 뜬 머리를 한 그녀가 걸어 나왔다. 하품을 자그맣게 하더니, 버릇인 듯 귀맡을 쓸어넘기곤 아직 졸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내 쪽을 보고도 계속 시선을 돌리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아직 잠이 덜 깬 것인지, 혹은 나는 안중에도 없는 것인지 궁금해졌던 찰나, 그녀가 내 앞에 천천히 다가와 앉았다. 잠시 멀뚱멀뚱 내 뒤 어딘가를 바라보다, 두 번째 하품을 하곤 말했다.
머리 많이 떴어요?
나는 잠시 대답들을 쏟아냈다.
상중인 여자는 항상 붕 뜬 머리를 하고 있어야 예의일 것 같은 정도로만.
뭐예요, 그게.
그녀는 피식 웃더니 묶지 않은 뒷머리를 양손으로 쓸어 넘겼다. 그리곤 잠시 나를 바라봤다.
몇 살이게요.
글쎄. 술 마신 다음날 늦게 일어나 세수를 했을 때 그렇게 물어보긴 했어. 스스로한테.
한두 살은 더 먹어 보이는데요, 어제보다.
떡국 곱하기 이는 소주 한 병. Q.E.D. 고마워, 조수.
뭘요, 박사님.
내가 농담하는 내색조차 않자 그녀는 오히려 자그맣지만 깊게 웃었다. 그러더니, 양손으로 턱을 괴곤 내게 되물었다.
정말로 몇 살이게요?
어찌 대답해야할지 잠시 고민하는 척 했다가 대답했다.
스물 하나. 일부러 틀려보았다.
영계 좋아하시는구나?
이번엔 정말로 난감해져 내 표정이 어떤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잠시 웃더니 말했다.
아무 이유도 없는데 왔으니 수고비를 드릴게요.
무슨 이유에서?
그녀는 맨손으로 인절미 하나를 집어먹곤 우물거리며 말했다.
아무 이유 없어요.
노란 떡고물이 입술 근처에서 반들거렸다.
흐름은 너무도 부자연스러웠다. 그와 동시에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부자연스러움과 당연함 사이에 연관성을 찾기란 힘들었고, 그렇기에 더더욱 당연함은 확고히 다가오려 했다. 당면한 당연함의 무게에 섬짓 발뺌할 새도 없이, 아니, 오히려 내가 당연함을 밀치며 벗기고 만지고 주물렀다. 그러면서 그가 죽은 이틀 후 그의 여동생을 안는 것에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답은 없었다. 서로 왠지 몰랐다. 만난 지 하루만에, 무슨 당위성이 내포되어 있어 몸을 섞는지도 몰랐다. 그녀의 하얀 목덜미만큼이나 새하얘서 아무 것도 건져 올릴 것이 없었다. 그 무가치함을 우리는 서로의 몸에서 찾으려는 듯, 혹은 보상받으려는 듯 서로를 가졌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힘의 균형이 이루어져 반반이 되었다. 누런 시트 위로 땀방울이 굴렀다. 만난 지 하루만에, 나는 녀석의 여동생의 처녀막을 찢었다.
모르겠다. 그녀를 안고 있는 지금 마음은 오히려 차분히 지금과 먼 어떠한 것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느낄 수 있었다. 몸과는. 열기와는 거리가 먼 것을 몸으로 읽어낸다는 게 퍽 우스워 웃었다. 그녀가 움찔해왔다.
그녀를 안으며. 그녀가 타고 있었던 에스엠 파이브가 생각났다. 반파되어 있었다. 휀다부터 뒷좌석 도어까지. 프레임이 으스러져 있었다. 다이아몬드 크러쉬였다.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그녀의 죽음과 그의 생존의 흔적을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속으로 내가 아는 식은 지식만을 되뇌일 뿐이었던 나 자신이 기억났다. 으스러진 뼈. 얼굴. 기름이 섞인 핏방울. 상처라도 없이 살아있었다면 차라리 신을 원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도 않았다. 허벅지 아래로 아작난 그의 왼쪽 다리와 으깨진 왼손의 깁스를 뜯어 발겨버리고 싶은 마음을 씻어 흘리고 나는 병실을 나서 영안실로 갔다. 그는 나를 따라가지 그 곳에 가지 못하는 것에 슬퍼했다. 그리고나서 그 곳에서 그를 본 게 전부다. 숨이 차올랐다. 몸과 머리가 따로 놀았다. 내 몸이 보기엔 이게 내 머리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것 같았고 내 머리가 보기엔 내 몸이 그러했다. 그녀가 내가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을 알듯이 나 또한 그랬다.
그녀의 뒷태가 보였다. 앞으로 머리칼이 넘겨져, 가녀린, 쥐기만 해도 부수어질 마냥 얇고 고고한 목 뒷부분이 보였다. 나는 문득 살의를 느꼈다. 그녀에 대한 살의가 아니었다. 그녀의 고고함에 대한 살의였다. 부딪히고 끼어 으스러진 그녀의 상실에 대한 살의였다. 짓부숴버리고 싶어졌다. 그녀와 그녀의 고고함이 비슷하게 닿아옴에 이유가 있었다. 그렇다면 짓눌린 몸 또한 비슷해야 하리라. 나는 그 논리에서 하등 오류를 찾을 수 없었다. 조심스레 감싸쥐었다. 두 손에 뒤에서 앞까지 닿아 닫혔다. 그녀는 잠시 느려졌을 뿐 계속이었다.
그녀의 정수리가 보였다. 작은 가마와 풍성한 머리카락이 보였고, 귀맡의 살짝 튼 피부가 보였다. 매일같이 쓸어 넘기다보니 텄나 싶었다. 아름답게 굽이진 어깨 아래로 어깨뼈와, 살짝 튀나온 등뼈와 허리뼈, 그리고 엉덩이가 보였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목은 여전히 그러쥐고 있었다. 그녀가 자세를 바꾸려 하는 게 느껴졌다. 기회는 지금 뿐이라고 그녀가 메아리 질렀다. 지금이 아니면. 그가 내게 찔러오던 날 밤, 접점인 이 시선. 이 자세. 이 구도가 아니면 넌 할 수 없어. 라고 그녀가 되뇌어왔다. 무얼? 내가 묻자, 그녀는 내 뒤에서 내 양팔 위에 팔을 겹치곤 살며시 밀었다. 등에 그녀의 가슴이 닿아왔다.
네가 그토록 원하는 것.
그녀는 잠시 쉬고는 내 손에 힘을 주려 했다. 그녀의 목울대가 닿았고, 그녀는 움찔하며 살짝 멈췄다. 하지만, 알고 있다는 듯 느껴졌다.
내 존재.
그리고 손은 내 손이 아니게 됐다.
담배 연기가 침대 바로 위 환풍구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며 내가 물었다.
……눈이 오겠지?
그녀는 말이 없었다. 나는 손바닥을 펴 그녀의 어깨부터 등허리까지 살며시 쓸어내렸다. 부드럽고 온기가 있었다. 그녀와는 다른 것이었다. 나는 잠시 담배 한 숨의 틈을 두고 다시 물었다.
눈이 올테야.
그녀 쪽에서 부스럭 소리가 났다. 그녀는 내게 몸을 돌려 밀착해왔다. 춥다는 듯이. 너무 춥다는 듯이 내게 붙어오더니 들릴까 말까 한 크기로 말했다.
응.
End.
13 06 27
00 18-21 [N]
고개를 돌려 곧 얼어붙을 물방울 하나가 굳는걸 보곤 그녀를 끌어안았다. 추웠다. 하지만 견디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거리가, 멀었다.
'작품 >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양이 한 방울의 눈물이 되던 날 (0) | 2014.01.01 |
---|---|
겨울冬寒 (0) | 2013.12.04 |
균형 잡는 자 (0) | 2013.11.23 |
일일사진 (0) | 2013.11.23 |
권총을 배달받은 어느 날의 사나이 (0) | 2013.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