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소녀와 어느 먼 나라의 임금이 꾸는 꿈

작품/짧은 글 2013. 11. 23. 02:59

언젠가는 만날 줄로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손끝에 닿아 만지고 느끼고 살아 숨 쉬는 그 숨결을 공유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먼 나라의 왕이 꾸는 짧은 꿈자락과 같은 것이었고 그것을 부여잡은 나는 그 꿈의 끝에서 결말을 바로보고는 주저앉아 가라앉아갔다. 모든 빌딩과 건물들이 사라진 한 들판을 보고 있었다. 인위적인 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마분지로 접은 큰고니 한 마리만이 하천 위를 날고 있었다. 갈대들은 오랜 시간동안 한 방향으로만 불어온 바람 때문에 뒤로 누워 잠자고 있었고, 내 앞으로 곧게 뻗다 굽이굽이 굽어가는 길의 끝에는 누군가가 흰색의 나풀거리는 원피스를 입고 걷고 있었다. 모든 것은 다 원래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 하얀 원피스에 머리가 샌 듯 새하얀 소녀의 저 먼 뒷모습을 바라보며 저 소녀가 그 사람의 원래의 모습인가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꾸만 바라보게 되었다. 위로는 내가 나아가야할 길로 향하는 언덕이 있었고 그 언덕으로 나는 부정하면서도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천천히. 가을녘에 단풍이 물드는 속도와 비슷하리만치. 힐끗힐끗 계속 바라보았다. 소녀는 거의 뛰놀다시피 빙글빙글 돌며 새하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소녀의 모습은 점점 저 너머로 멀어져갔고, 나는 꿈자락의 끝에 다다른 나를 알아차리고는 표정관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슬퍼졌다. 원래의 세계를 버리고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슬픈 얼굴을 하고 돌아다닐 수 없다고 생각했던 걸까. 어찌됐든 나는 슬픔을 떨쳐내고 다시는 볼 수 없을 그 모든 태고의 것을 마지막으로 보려 했다. 소녀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moby - blue paper
이 문고판 용지 한 장에 담아내는 나의 이야기는 그렇게까지 길지도 않고 오히려 극히 짧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내가 어느 하천의 산책로를 걷다가 본 환상 아닌 환상과 실제 아닌 실제를 이 종이 한 장에 풀어내고자 하는 이유는 말하려고 입을 열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두루뭉실하고 많을지 모르지만, 어쩌면 단 하나뿐일지도 모른다. 나는 어디선가 정해진 것에 따라 이 길 위를 걷고 있었고, 어느 이유에선가 그 누군가도 정하지 않은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치에 의해 그렇게 정해진 무엇인가가 나에게 그녀를 보여주었고 나는 그것으로 인해 왠지 모를 편안함과 공허감과 슬픔과 아쉬움과 작별과 허虛함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곳에 있고 이곳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바라보여지고 있지만 닿을 수 없는, 그 머나먼 어느 나라의 어느 한 가난한 왕이 꾸는 꿈의 마지막 결말과 같은.죽도록 나아가도 닿을 수 없는 이상향이라는, 언젠가는 닿겠지 하지만 닿을 수 없다는 것에 나는 이 한 페이지의 글을 쓴다.


원래는 새하얀 소녀와 어느 먼 나라의 임금이 꾸는 눈물의 꿈이었으나, 뭔가 쓸데없이 붙어있는 것 같아서 지웠습니다.

2012 02 22 10 49 작입니다.

[N]

 

중간에 오른쪽 정렬이 되어있는 것은 저 중간의 moby - blue paper를 정렬하다가...어찌 고칠지 모르겠군요. 들여쓴 이유는 한컴 신국판의 문서 크기를 맞추기 위해서 입니다. 딱 한 장이 나오는 글이었어서요. 가독성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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