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숫가

작품/짧은 글 2013. 11. 23. 03:49

바람이 서느렀다. 이태까지의 바람과는 서뭇 다른 느낌이었다. 살갗을 넘어 뼛속 안에 닿아오는, 차가워오는 느낌이 없이 내 피부가 애초에 서늘했던 듯 느끼게 만드는 바람이요 흐름이었다. 이따금 그 것들이 흘러가다 나라는 둔덕을 넘어 갈때면 그들은 내게서 체온을 살며시 앗아갔다. 나는 죽은지 꽤 된 시체마냥 서늘해진 팔뚝을 비벼만지며 날씨를 즐겼다. 손바닥에 긁히는 팔의 살갗이 차가움에 달궈져 당기었다.

안개가 진함과 옅음의 차이가 없이 고르게 뿌리어있었다. 살며시 보이는 저 너머의 빌딩들이 내 고향에서의 풍경처럼 산이었으면 싶었다. 그 중간, 안개에 가리워진 것이 호숫가의 둔덕일 것이며, 안개가 서서히 저녁이 되어 걷어지고 나면 커다란 호수가 잔잔히 너울질하며 수면에 떠있는 풀잎이며 개구리밥을 좌우로 저울질 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도시 한복판. 내가 그리던 그 광경은 이미 멀리 떠나왔고, 그리고 나는 방금 시체마냥 식은 팔뚝을 비비며 그 시림이 마찰열을 견디다 못해 가슴 한복판으로 가는 것을 알아차렸을 뿐이다.

추우니 여느 날처럼 반팔 입지 말고 잘 입고 다니라고 그녀에게 연락을 하고 싶어졌다. 그녀는 뭐라고 보내올까. 여느 때처럼 그래 고마워. 라고 보내올까. 아니면 이제 그만 연락해. 전에도 말했잖아. 자주 하지 말라고. 라고 할까.

나는 모른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어렸을 적 그 때 그 곳에서 손바닥으로 어루만졌던 그 서늘함을 온몸으로 맞서는 것이 너무 슬프다는 것 뿐이었다.

세월이 지나 나는 아직 어린아이일 뿐인데도 자라난 내 몸을 보고는 한기가 똑같이 자라나 나를 덮쳐온 성 싶었다. 그리고 난로는 있었지만, 그 난로에 딱 들어맞는 땔감은 저 멀리. 닿아본 적도 없는 호숫가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 닿지 못할 것이다.

오늘도 나는 호숫가에 앉아서 짙게 깔린 안개를 보며 마음을 고이 접어 돛단배를 만들었다.

띄우지 않고 구겨 버린 종잇배들이 내 옆에 수없이 널브러져 있었고...


2013 05 29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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