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

작품/짧은 글 2013. 11. 23. 03:43
유리창에 영근 빗방울은 하천줄기마냥 여러갈래로 나뉘어 흐르다가 이내 실리콘으로 막음질된 모퉁이에서 흘러내려 사라졌다. 뭉게져 흩어져 흐름으로, 흐름에서 다시 뭉게져 하나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그 누구의 무언가와 같았다.

유리창에 대본 손에는 한기가 어렸다. 조금은 아득히 먼 어딘가에 지독한 추위가 있는 느낌이었다. 한기는 너무나도 선명해서 그 선명함으로 나를 베고 들어올 것만 같았다. 선명함 자체에 얼음 송곳이 돋아 있는 듯이.

어린 아이의 것으로 되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항상 이 추위 앞에선 나는 브람스에서의 그 아이의 모습이다. 한없이 작았다. 우주적인 존재 앞에 선 느낌이었다. 절대영도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지독한 추위였지만, 결코 내가 죽거나 다치지는 않았고, 그저 그 선명함에 베여가며 놀란 눈을 감추지 못할 뿐이었다.

어딘가에서 달그락 소리가 들리고,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피겨 선수를 보던 시선이 따뜻한 스프와 양돈까스로 돌아갈 적에, 상처는 지혈되고 나는 그 아문 상처 안에 그 한없는 차가움의 씨앗을 문 채 그렇게 자랐다.

이따금, 비가 너무도 맑게 내려 운동장에 먼지을 흩뿌릴 것만 같은 날씨에, 축축하지 않고 선명하고 차가운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다보면, 문득 가슴 한 켠에 바람이 불어 내 살을 비집고 타들어온다.

그럴때면 그 선명함을 떠올리고는 이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유리창에는 아직도 수증기가 서려 얕게 얼어붙어 있었다. 나는 손이 더러워진다며 야단치는 어머니를 듣는 둥 마는 둥 하고는 그 빳빳하면서도 사르륵거리는 냉기를 조심스래 활짝 핀 손바닥으로 훑어 피부로 그 맛을 봤다.



어느샌가부터, 유리창은 더더욱 차갑고 선명해져만 갔다. 내가 어른이 되고 부터는 더더욱...


2013 0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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